서론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범유행으로 세계 각국의 의료 환경은 원격의료(telemedicine)의 확산이라는 큰 변화를 가져 왔고,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나라는 2002년 개정된 의료법 제34조의 원격의료에 관한 규정을 통해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는 허용되었지만, 최근까지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는 제한되어 왔다. 보건·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원격의료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었기에 지난 10년간 정부가 추진하고자 했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에 대한 정책들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였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시범사업들을 지속해 온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하여 원격의료 대신 비대면 진료로 용어를 정리하고 전면적인 원격의료의 허용과는 다르다며 선을 긋고, 전화상담·처방 및 대리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2020년 2월 24일) [
1]. 이 제도를 시행한 궁극적 목적은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고 의료기관 내 감염원 유입을 방지하며, 만성질환자, 노약자, 임산부 등 고위험군 환자의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2]. 그러나 정부에서 발표한 비대면 진료 관련 가이드에는 대상환자에 대한 제한이 없고, 전 국민이 전화상담 또는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의료기관에 허용하였다[
3].
의료계에서는 유선을 이용한 상담과 처방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대면진료 원칙을 훼손하며 현행법상 위법의 소지가 있으며, 전화 진료의 특성상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존 원격의료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4]. 비대면 진료는 전화나 화상통화를 이용하여 다른 공간에 있는 의사와 환자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므로 원격의료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원격의료에 대해 제도화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현재는 한시적 전화상담·처방을 통해 비대면 진료의 확대 가능성을 두고, 일차의료 기반 만성질환 관리, 의료기관과 연계한 생활치료센터, 보건소 중심의 모바일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 확대 검토를 언급하였고, 한국판 뉴딜 계획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포함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지원할 계획들을 발표하였다 (2020년 7월 14일)[
5]. 의료정책연구소가 2021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비대면 전화 진료를 시작한 올해 2월 24일 부터 9월 30일까지 약 7개월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된 전화상담·처방 진료횟수는 917,813건이었다. 참여한 의료 기관은 총 8,273개소(전체 의료기관의 약 12%), 609,500명의 환자가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6].
현재까지 급속하게 추진되어 온 비대면 진료는 아직 제도적 기반이 상당히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12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49조의3의 의료인, 환자 및 의료기관 보호를 위한 한시적 비대면 진료)’ 개정을 통해 국가 위기상황에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국가 위기상황에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이제 법률에 근거하여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국민은 전화 진료뿐만 아니라 화상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졌고, 비대면 진료 참여를 원하는 의료기관은 모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 비대면 진료는 많은 부분이 의사의 판단과 재량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전화상담·처방 제도는 코로나19의 특수한 상황에서 모든 의사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시행된 비대면 진료라는 점에서 의료인과 의료이용자들의 의견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본 연구는 의료제공자 측면에서 전화상담· 처방 제도에 대한 의사의 인식과 향후 제도 도입의 가능성, 전화상담·처방을 제공하게 된 이유 및 제공 후 만족도 수준 등을 파악하고자 전국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하였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제도 도입 시 전반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기초자료로서 기여하고자 하였다.
고찰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내 의료 환경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가 전화상담·처방 및 대리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고 발표한 후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었고, 제도적 기반이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12월에는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이에 모든 국민은 전화뿐만 아니라 화상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졌고, 비대면 진료 참여를 원하는 의료기관은 모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의료제공자 측면에서 전화상담·처방 제도에 대한 인식과 제공 후 만족도 등 실제 경험을 통한 실증적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조사결과 최종 분석대상 응답자는 6,342명으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확산 상황과 무관하게 전화상담·처방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부정적(77.1%)이었으나, 상급종합병원(28.4%)이나 의과대학(46.9%)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이 다른 직역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의사들은 전화상담·처방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만약 도입된다면 보건기관 (35.0%)이나 의원(27.1%)에서 시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다수 응답했다. 연령이 높거나 개원의들의 경우에는 의원에서 시행하는 것을 더 선호하였고,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및 병원 근무 의사들은 병·의원보다는 오히려 보건기관에서 시행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비대면 진료를 도입해야 한다면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보고하고 있는 기존의 선행연구들을 뒷받침하는 결과라 생각된다.
이러한 결과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Widmer 등[
7] 연구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통해 체중, 체질량지수 및 혈압과 같은 심혈관 질환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다고 보고하였고, 비대면 진료 중재 방법이 당뇨병 환자의 혈당조절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는 다수의 연구결과들도 보고되었다[
8-
11]. 국내에서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진료에 대해 연구한 Kim 등[
2]은 주기적인 약 처방을 위해 전화상담이 유용하고 관리가 필요한 질환에 대해 비대면 진료 수용도가 높다고 보고하였다. 특히 의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통해 전화상담·처방이 유용한 환자군은 환자의 상태가 일정한 만성질환자(고혈압, 당뇨병)를 대상으로 하는 진료과와 진단결과를 알려주는 산부인과를 제안하였다.
코로나19 이전에 비대면 진료의 영향을 보고한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보고서에서는 13개 국가의 전문가 인터뷰 분석결과를 제시하였다[
12]. 보고서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가 비용효과적인 케어를 제공(9개국 긍정적 보고)하고, 의료 질향상(7개국 긍정적 보고), 접근성 향상 및 공급 불평등 감소 (6개국 긍정적 보고) 측면이 높다고 하였으나, 진료연속성 증가, 상담량 증가, 진료효율 개선, 농촌지역의 형평성 있는 접근, 입원·응급치료 방지, 만성질환자 돌봄 등 환자 건강 결과와 관련한 항목들은 13개 국가 중 4개 국가 이하로 긍정적이라고 보고하였다. 따라서 비대면 진료가 환자의 건강 결과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단정하여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비대면 진료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한 연구들은 정보통신기술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보았으며[
13], 비대면 의료서비스 적용이 의료 질과 돌봄의 연속성을 향상시켜 원거리에 있는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예방 가능한 보건의료 비용을 감소시킨다고 보고하고 있다[
14].
이 연구결과 현재 진료업무를 주로 하는 의사들의 31.1% 는 전화상담·처방 진료를 제공한 경험이 있었고, 직역별로는 교수, 전임의, 개원의, 공보의들이 주로 경험이 많았고, 내과계(44.5%) 진료과목에서 이용한 비중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초기 코로나19 확산세가 두드러졌던 대구, 경북, 서울, 경기에서 전화상담·처방 진료를 수행한 경험이 높았다. 의사들은 전화상담·처방 진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로 환자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그 다음으로 감염 등의 우려와 함께 환자의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전화상담·처방 진료를 제공한 의사들은 환자의 안전성 확보에 대한 의료적 판단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83.5%). 전화상담·처방 진료를 제공하지 않은 의사들도 제공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환자 안전성 확보에 대한 의료적 판단의 어려움(70.0%)과 책임소재 문제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56.1%)이라고 응답했다.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되어 있는 주요 국가들도 코로나19 동안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경험을 보고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메이요 클리닉에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동안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의사들의 인식을 조사한 연구결과, 의사들이 비대면 진료를 사용하여 환자와 의사소통이 쉽고 편하다고 인식(81.5%)하고 있었고, 응답한 의사들의 63.7% 가 비대면 진료를 위한 정보통신기술 지원이 충분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모든 요소가 동일하고 환자치료에 지장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응답자의 42%는 대면진료보다 비대면 진료를 더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15]. Gillman-Wells 등 [
16]은 영국 성형외과 의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가 원격진료 사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Srinivasan 등[
17]은 감염병 동안 이용했던 일차의료 비대면 진료(video visits)를 지속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외에도 비대면 진료를 통한 비용효율성 측면, 환자와 의사의 시간 절약, 방문일정의 유연성 증가 등 비대면 진료의 이점을 보고하였다[
18-
20].
이러한 결과들은 본 연구결과와는 상이한 결과로 볼 수 있으나, 메이요 클리닉 조사에 응답한 의사들의 63%가 일차진료와 내과를 주로 진료한다는 점과 미국, 영국 등은 코로나 19 이전부터 비대면 진료 사용이 제도화되어 있었던 반면, 우리나라는 코로나19로 제도적으로 상당히 미흡했던 상황에서 한시적 적용이라는 도입 과정을 통해 실제 이 제도를 이용했던 의사들의 경험이 나타난 것이므로 국외 비대면 진료 경험에 대한 연구결과들과 본 연구결과를 직접 비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되어 있는 많은 국가에서 의사들이 비대면 진료를 통해 경험한 다양한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대면 진료가 대면진료와 같은 진료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의사들도 우려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메이요 클리닉 의사들의 약 1/3 정도는 비대면 진료가 대면 진료와 비슷하다고 인식하지 않았고[
15], Zhang 등[
21]의 연구는 코로나19 동안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방사선종양학과의 92%가 비대면 진료를 수행했다고 보고하였는데, 연구결과 응답자의 71%가 암을 적절하게 치료하는 능력에 차이가 없었으며, 55%는 방문 진료를 통한 의료의 질과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스탠포드 대학 ClickWell Care 클리닉의 연구에서는 비대면 진료와 대면진료의 패턴을 평가했는데, 가장 일반적인 진단 17개 중 비대면 진료와 대면진료 간에 지시한 검사 및 영상검사, 처방전에 차이가 없다고 보고하였다[
22].
코로나19 발생 이후 주요 국가들은 기존의 비대면 진료와 관련한 제한적인 조항들을 대부분 폐지하거나 서비스 항목및 범위를 확대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 나, 영구적인 규제 완화가 아닌 기한을 두고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
23,
24]은 비대면 진료에 대한 규제를 코로나19 초기부터 완화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주별로 진행속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으나 대상환자에 초진환자를 포함하 였고, 지역 제한 해제, 진료 가능한 과목 추가, 서비스 제공 방식과 제공 수단 제한을 해제하고,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및 민간의료보험에서 비대면 진료의 급여 적용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전면적 혹은 영구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거나 제한 규정을 해제한 것은 아니고,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비대면 진료 기한을 정하거나 조정(예, 8주)하였다. 프랑스 [
25]는 코로나19 확산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 관련 모든 규제 제한을 해제하고, 국가에서 100% 보험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2021년 12월 말까지로 적용기한을 정해두고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호주[
26,
27]는 코로나19 초기 에는 대상환자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고 초진환자도 진료에 포함하였으나 시행 후 2달 만에 대상환자에 대한 규제를 적용해 지난 1년간 대면진료한 기록이 있어야 함을 규정하였고, 대상지역 및 서비스 항목은 제한 해제하고 서비스 제공 방식도 기존에 허용하지 않았던 영상통화와 앱까지 모두 허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대면 진료에 대한 규제들을 영구적으로 모두 해제한 것은 아니고, 2차례 연장기한을 발표 하였고, 최종적으로 2021년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허용 하였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진료에 대한 관심과 이용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규제 불확실성, 정보보완 문제, 환자의 사생활 보호, 모호한 관리체계 및 법적 책임 문제, 수가 문제 등 중요한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 비대면 진료가 의료 접근성과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진료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반면, 새로운 위험들을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덴마크의 비대면 진료 평가 모델(Model for Assessment of Telemedicine) [
28]과 같이 의학적, 사회적, 경제적, 윤리적 측면에서 엄격한 평가 모델을 개발하고, 평가를 통해 발생 가능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평가 프레임에 대한 논의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이 연구결과를 통해 의사들은 전화상담·처방 제도에 대해 근무기관별, 진료과별, 지역, 의료기관 종별로 상이하게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후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의견 수렴과 세부적인 내용 등을 조사하여 비대면 진료 확대 가능성에 대비한 정책 대안이 보다 세밀하게 검토되고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연구는 전화상담·처방을 시행한 종별 의료기관의 운영현황, 경험, 개선사항과 같은 구체적인 의견들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료 계의 대규모 조사연구를 통해 전화상담·처방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을 파악함으로써 관련 정책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