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정원 증원 발표로 인해 의학교육의 발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후속으로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을 발표하였으며, 의료인력 수급 정책을 위한 ‘인력 수급 추계 조정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인력 수급 추계 전담기구를 설치하여 정기적인 수급 추계를 실시하고,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를 통해 인력 정책 수립을 위한 수급 추계 모형 및 추계 방식, 결과 등을 검토하여 의사결정기구에 보고하며, 직종별 자문위원회를 거쳐, 최종 의사결정기구를 통해 인력 수급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의료인력 수급 정책을 다루는 일종의 거버넌스를 구현하고자 한 의도로 보이지만, 의사 수급 추계 전담기구로 국책연구기관을 선정한 점과 더불어 전문위원회를 기존의 보건의료기본법 상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활용한다는 방침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의료 전문가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사 인력 수급 정책의 중요성 및 전문성 등으로 인해 주요 선진국의 경우 의사 인력 수급 관련 전문 기구를 두고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한 논의 구조를 구축하여 의사 인력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는 의대정원 관련 정책에 대한 의-정 간의 논의를 기반으로 한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갖추고 있다. 이 연구는 일본 의대정원 관련 정책 추진 과정을 분석하여 우리나라 의사 인력 수급 거버넌스 확립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 논문은 2024년 8월 16일 의료정책연구원 홈페이지게 게재된 이슈브리핑의 내용을 일부 수정·보완하였음을 미리 밝혀둔다[
1].
일본 의사 수급 관련 정책 추진 경과
일본 정부는 1970년 최소 인구 10만 명당 150명의 의사 확보를 목표로 1985년까지 양성한다는 목표 하에 ‘의과대학이 없는 지역 해소 방안’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 결과, 목표한 기간보다 2년 빠른 1983년에 해당 목표를 달성하였다[
2]. 이후, 후생노동성 산하 ‘의사수급분과회’의 전신인 ‘장래 의사 수급에 관한 검토회’가 1984년 공개한 최종 의견서에는 이러한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15년경에는 의사수가 10% 과잉이 되어 의사의 질 저하 및 국민의료비 증가가 예상되므로, 1998년까지 신규 의사 10% 감원을 위한 입학 정원을 감축할 것을 문부과학성에 요구하였다[
3]. 이후, 의대정원을 대폭 감축하였으며, 2007년까지 의대정원은 7,625명까지 감소했지만, 2008년부터 ‘新의사확보종합대책’에 따라 전국 도도부현에서 원칙적으로 5명씩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왔다. ‘일반 정원’ 및 ‘지역(산간 벽지 및 의사 부족 지역에서 의무 기한 9년간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입학 정원) 정원’ 등을 포함하여 2023년 기준 9,384명까지 증원하였으며, 2024년까지 의대 입학 총 정원수는 9,420명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Table 1) [
4].
의사수급분과회 설립 배경
일본 의사수급분과회는 의정국 산하 조직으로서 ‘바람직한 의대정원 확보 방안’을 위해 발족하였다. 이 분과회는 전술한 바와 같이 1980년대 초반에 발족한 ‘장래 의사 수급에 관한 검토회’부터 이어져 왔으며, 2015년부터 ‘의사수급분과회’라는 명칭을 사용함과 동시에 의사의 수요 및 공급 조절을 위한 의대정원 관련 논의 및 의사의 지역 편재현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 오고 있다.
이 분과회는 2015년 12월 10일 첫 회의 개최로 공식 설립되었다[
5]. 초기에는 의사 공급 및 수요 조절 등을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였으며, 첫 회의에서는 의사 수급에 대한 기본 방향성 및 의대정원 조정 방안이 주로 논의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의사 수급 문제를 다루며 다양한 정책 변화를 주도해왔다. 의대정원 결정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2020년 11월 18일에 시행된 회의부터 시작되었으며[
6], 최근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의사수급분과회 구성 및 논의 방식
이 분과회 소속 위원은 2022년 1월 기준 총 22명이며, 이 중 의사 출신 전문가는 1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7]. 임기는 2년이며, 연임에 관한 특별한 규정은 없다. 일본은 정교한 의사 수급 추계 등을 통해 의사 수요 문제를 개선해 나가고 있으며, 한꺼번에 많은 인원을 증원하는 방식이 아닌 점진적으로 인원을 증원해왔다. 또한 최근 인구 감소 추이 등을 고려하여 의대정원을 줄이기 위한 검토를 시행 중이며, 의사 수급분과회에서 논의된 내용은 모두 녹취록 수준으로 기록되어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 회의록 형태로 공개된다. 2015년 12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의대정원 관련 논의된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사수급분과회 주요 논의 내용
1. 의대 입학 관련 ‘지역 정원’ 설정 방안
2023년 이후, 산간 지역 등 의사 과부족 지역에서 9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조건으로 입학하게 될 ‘지역 정원’ 설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후생노동성의 의사 수급 추계 분석 결과, 주당 근무시간을 55시간 기준으로 할 경우, 2032년 의사수가 36.6만 명으로 수급 균형이 이루어지게 되며, 주당 근무시간을 60시간 기준으로 할 경우, 2029년 의사수가 36.6만 명으로 수급 균형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향후 의대 총 정원에 대한 적정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Figure 1) [
8].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계산방법은 의사수급분과회에서 논의하여 결정하며, 이를 기반으로 후생노동성에서 추계한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지역 정원 입학자의 의무 근무 기간 만료 이후, 해당 지역 정착률은 80% 이상으로 일반 전형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2006년부터 2019년까지 의료제공체제 확보 차원에서 지역 정원수를 늘려왔다. 지역 정원 제도는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인 A 유형(A1, 별도의 지역 정원 전형으로 입학생을 선발하고, 졸업 후 일정 기간 동안 의무 복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A2, 입학 후 지역 정원으로 선발하여, 졸업 후, 일정 기간 동안 의무 복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및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 제도인 B 유형(B1, 별도의 지역 정원 전형으로 선발하고 졸업 후, 일정 기간 동안 의무 복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B2, 별도의 지역 정원으로 선발했지만, 졸업 후 의무 복부 수행 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으로 구분된다[
9]. 또한, 지역 정원 의사들의 의무 이행 기관은 A 유형의 경우 80.3%가 대학을 포함한 지사(도도부현[都道府県]=일본의 기초 지자체에 해당하는 시정촌(市町村)을 포괄하는 광역지방공공단체) 등이 지정한 공공병원에서, B1 유형은 지정된 대학병원 및 관련 병원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86.4%였던 것으로 나타나, 지역 정원 의사들의 대부분은 각 지역 소재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able 2) [
10].
또한, 의대정원 결정 방식에 대해서는 다음 4가지 내용이 논의되었는데, 첫째, 의사 부족 등 각 지역의 사정에 따라 ‘지역(임시) 정원’을 설정하여 증원하며, 둘째, 일반(영구) 정원의 경우, 소수의 인원을 점진적으로 증원하고, 셋째, 의사 수급의 균형화 이후, 의사수 과잉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임시) 정원’을 포함한 전체 정원을 감원하며 넷째, 의사수에 대한 급격한 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의대정원을 단계적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의대정원의 추이를 살펴보면,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총 입학 정원이 증가하였으며, 지역 정원수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일반정원은 감소하였다. 2020년부터 2022년에는 전체 의대정원이 비슷하게 유지될 예정이며, 2023년 이후, 의대 총 정원 중 ‘지역(임시)정원’을 증원하고 ‘일반 정원’은 줄이는 방향에 대해 검토 중이라는 내용이 제시됐다(
Figure 2) [
11].
또한, 산간 지역 등 의사수 부족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 확보를 위해 지역사회 실정에 맞는 지역 정원 설정 및 증원 방안이 제안되었으며, 향후 의사 과잉 현상 방지 차원에서 의대 총 정원을 감원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와 더불어, 의대정원 변화에 따른 극적인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의대정원을 변경하자는 의견과 함께 지자체 및 각 대학의 상황을 고려한 지역 정원 확보 방안 등이 제안되었다.
2. ‘지역 정원’ 관련 개선방안
지역 정원 입학에 대한 문제점을 확인하기 위해 고치현의 사례가 논의되었다. 지역 정원 입학생이 필수의료 진료과에 해당하는 진료과를 지정할 경우, 기본 장학금에 인센티브 금액이 적용되어 장학금 증액이 이루어지는데, 입학 당시에는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의 지원자가 많지만, 졸업 시, 진료과를 변경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경우, 인센티브로 지급한 장학금을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도부현의 노력과 인센티브 장학금 제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도 존재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또한, 이와테현의 사례도 논의되었는데 지역 정원 입학 전형 시, 지정 진료 과목으로써 산부인과와 소아과를 지정하도록 되어 있지만 지원자가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와 같이 입학 시, 특정 진료과를 사전에 지정하도록 조건을 적용할 경우, 지원자의 수준이 저하될 우려가 있어 졸업 및 의사면허 시험 통과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으며, 고3 학생이 대학 입학 시, 의료와 의학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진료과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과 함께 특정 진료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갖기 어려울 수 있어 ‘진료과 지정’ 필요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현재 지역 정원은 일반 전형으로 입학하는 형태가 아닌 별도의 입시 전형을 거쳐 입학하는 형태인데 향후 전체 의대정원 내에 지역 정원수를 포함해 나가게 될 경우, 각 대학에서는 지역 정원 입학자수를 제한하려고 하는 반면, 도도부현에서는 의사수 확보를 위해 지역 정원을 증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 함께 이러한 역학 관계에 대해서도 고려해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의사 편재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의료법과 의사법을 개정하였으나 이에 대한 성과지표가 아직 확보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지역 정원 입학 조건의 경우, 일률적으로 특정 지역에서 9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조건을 적용하기 보다는 매력적인 교육 및 연수 프로그램 제공 등 입학 유인책을 마련해야 하며, 인구 감소에 따른 의사 수요 감소 상황을 고려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3. 의사 편재현상 개선방안
의사 편재현상은 지역 별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외래와 입원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재택 의료를 위한 왕진 의사 집단도 다수 형성되고 있어 이러한 변수에 따른 쏠림 현상에 대한 해결 방안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대도시권의 경우, 2040년까지 고령자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고령자의 80%는 대도시권에 분포하고 있어 의사 수급 불균형 문제와 함께 의사 수급 추계 자체에 대한 신뢰성 검증 및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의료기관 근무 의사 수의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과 개원의 수는 증가하고 있으나 병원급(이상) 의료기관 및 병상 수는 감소하는 추세이며, 병원급(이상)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수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일본 인구 1억 2,000만 명을 진료하기 위해 필요한 진료소 수는 6만 곳인 것으로 추산되며, 진료소 1곳당 지역 주민 2,000명을 커버할 수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산해보면 6만 곳의 진료소가 필요한 곳으로 산출된다. 현재 10만 곳의 진료소가 존재할 경우, 필요 진료소 6만 곳의 인력을 제외하면 4만 명의 의사가 남게 되므로, 이들이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면 병원급 의사 부족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의견이 제시되었으며, 향후 지역 의사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 등의 개혁을 추진해 나갈 계획과 함께 향후 감염병 유행 대응을 위한 의대정원 적정화에 대해 재차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내용 등이 제시되었다.
4. 의사 근무 환경 개선방안
의사수급분과회에서는 의대정원 문제와 더불어 임상연수 제도 및 전문의제도에 대한 조정도 함께 검토되었다. 의대 입학 시, 지역 정원 입학자의 경우, 도도부현 지사의 동의 없이 자신이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할 지역이 아닌 곳에서 전문 연수를 받은 자는 전문의 자격 인정을 불허하며, 도도부현 측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의과대학 임상 연수 보조금에 대한 감액 조치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또한, 산간 지역 등 특정 지역 내에서 일정 기간 동안 근무한 의사에 대한 인정제도 도입에 관한 내용도 검토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후생노동성은 2020년 1월 16일 ‘의료법 및 의사법 일부 개정을 위한 법률’ 시행에 대해 통지하였으며[
12], 의사수 편재 대책 마련을 위한 법률(2020.4.1. 시행) 개정 후,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시사점
일본 의사수급분과회는 의사 수급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개선방안과 정책방안을 논의해왔다. 지역별 의사수 확보를 위한 각 도도부현 지사의 권한 강화 및 산간 지역 등 특정 지역 내에서 일정 기간 동안 근무한 의사에 대한 인정제도 도입 등도 검토하였으며, 의사의 의료기관 종별 편재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등 일본 내 의사 수급과 관련된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의료 전문가를 중심으로 논의의 장을 만들고, 논의된 내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일본 의사수급검토회 구성원 가운데 의사 출신 전문가는 총 16명으로,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의사수급분과회는 2015년 12월 첫 구성 이후, 마지막 회의가 개최된 2022년 1월 12일까지 총 2회의 변화가 있었다. 2017년 기준, 구성원 18명 중 13명이 연임하였으며[
13], 2020년 기준 구성원 총 22명 중 1회 연임 3명, 2회 연임 12명, 신임 7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4]. 이 인원은 마지막 회의(제40회 의사수급분과회)가 개최된 2022년 1월 12일 기준 후생노동성 의사수급분과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구성원 명단과 동일한 인원이다[
15]. 연임된 구성원들은 과반 수 이상이 의사 출신이며, 의대정원 관련 정책 결정에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반영하여 논의해 오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이 점을 반드시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론
일본 정부는 1980년대부터 의료 전문가와 함께 의대정원 증원에 관한 논의와 함께 필요 인원을 추계해가며 조금씩 점진적으로 진행해왔으나, 우리나라는 그동안 의대정원 증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 없이 갑자기 많은 의대정원을 증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과 더불어 인구 감소 추세, 산간 벽지 및 지방 의료 소멸 가능성 등에 대한 문제에 종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의료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에 대한 논의 시,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닌 의료 전문가가 중심이 되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심도 있는 논의와 협의를 추진하고, 협의 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기전을 마련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