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당 국회의원 10명은 의사들의 집단 사직과 휴진을 불허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추진하고 있다(
Suppl. 1). 이미 우리나라에는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폐업하여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는 규정이 존재한다[
1]. 그것도 모자라 의료대란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사직의 자유까지 제약하려는 방향으로 입법이 추진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 법안이 통과되어 해당 위반행위가 형사처벌로 이어질 경우, 현행 의료법상 일정한 경우 의료인 면허취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1]. 해당 추진 법안의 취지를 달리 해석하면,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전문직에 대한 존중은 고사하고 근로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하는 기본권마저 통제하겠다는 발상으로 읽힌다. 의학 전문직업성은 사회와의 계약(social contract)에 기초하며, 그 핵심에는 충분한 자율성과 자율규제의 공간이 포함된다. 또한 의학 전문직업성은 환자 복지, 환자 자율성, 사회정의를 포함하는 동시에, 전문직의 자율성과 책임을 전제로 한다[
2].
위와 같은 의료법 개정안에서 제안하는 의사 전문직에 대한 통제는 구소련의 국가 주도 의료체계를 떠올리게 한다. 구소련의 Semashko 모델은 국가가 의료체계를 계획·통제하고, 졸업생 배치와 인력 운용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의료의 제공과 재정 역시 국가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3]. 구소련 및 일부 구소련권 국가들에서는 농촌과 취약지역 인력 확보를 위해 신규 졸업생의 의무배치가 운영되었고, 1990년대 이후 구소련의 다수 국가에서 이러한 제도가 폐지되거나 약화되었다[
4].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이유로 의사 집단에 대한 강한 통제가 정당화되는 것은, 의사를 독립된 전문직 집단이라기보다 국가가 관리하는 인적 자원으로 보는 시각과 맞닿아 있다[
3,
4]. 국가 주도 의료의 특징인 Semashko 모델 아래에서는 일차의료 의사들의 지위가 낮고, 보수 수준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조직 운영에 대한 영향력도 제한적이었다[
4]. 이번 법안을 소련식 통제와 직접 동일시하는 것은 과도한 유추일 수 있다. 다만, 국가가 의사의 개인적 사직의 자유를 형사처벌로 제약한다는 점에서, 전문직을 '국가 인적 자원'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의 부분적 유사성은 지적할 수 있다.
서구에서도 자율규제는 무제한이 아니지만, 전문직 규제는 국가 부처의 직접 행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영국에는 의사를 규제하는 독립 기구인 General Medical Council (GMC)이 존재하며, 여러 국가에서 의사 규제 과정에 국가의사단체가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5]. 반면 한국, 일본, 대만, 중국에서는 의사 면허의 핵심 권한이 정부 또는 국가시험·행정체계에 놓여 있다. 한국은 보건복지부장관이 국가시험과 면허를 관장하고, 일본도 후생노동대신이 면허를 부여한다. 대만은 국가시험 체계를 통해 의사 자격을 관리하고, 중국 역시 국가의학시험센터와 행정당국을 통한 국가시험 및 등록 체계로 의사 자격을 관리한다. 면허 권한이 국가에 집중된 동아시아 의료체계에서는, 처벌 기반 입법이 전문직 자율성을 더욱 심각하게 잠식할 위험이 있다.
의료가 국민의 기본권인 영국에서도 의사의 집회·결사의 자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영국의 인권 체계는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며, 실제로 British Medical Association은 National Health Service (NHS) 의사를 대상으로 산업행동 지침을 공개하고 있다[
6]. 동시에 영국에서는 NHS에 등록된 의사가 민간진료(private practice)를 할 수 있으며, NHS 근무와의 충돌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관리한다. 한국은 민간 의료기관 중심의 공급 구조이므로 영국 NHS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전문직의 집단행동권 자체를 형사처벌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구소련권 국가에서 의료인에 대한 국가 통제가 강했다고 해서 의료의 공공성이 곧바로 전문직 자율의 소멸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은 접근성과 보장성 강화의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것이 곧 전문직 기본권 제한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2].
의료의 공공성 강화와 의사의 공공재화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반복되는 의정 갈등은 단순한 정책 충돌을 넘어, 의학 전문직업성과 사회계약의 균열이라는 관점에서도 해석되고 있다[
7]. 이런 상황에서 입법 만능주의가 의사 집단 전체에 대한 통제 강화로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전문직의 자율성과 책임의 균형을 훼손할 수 있다.
지난 2000년 이후 한국 의료계의 집단행동과 정부의 대응은 반복적 충돌을 낳아 왔고, 최근의 갈등 역시 전문직 정체성과 사회계약의 위기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7]. 오래된 대정부 반복 갈등은 의료계 내부의 무기력감과 좌절감을 증폭시키고, 대정부 대응 전략을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2월부터 의대 정원 증가 안에 대한 저항으로 인한 전공의 사직과 의대 교육의 붕괴[
8]는 정상화하는 데 많은 시간과 경비가 투입될 것이다.
이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이런 입법안이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의사의 전문직업성을 점점 더 망가트린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형사처벌 중심의 강제보다, 독립적 의사 규제기구 설립, 필수의료 종사자를 위한 처우 개선, 의사-정부 간 제도적 대화 채널 마련 등 전문직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존중하는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