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배경
의사 양성 과정은 의과대학 기본의학교육(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과 졸업 후 의학교육(postgraduate medical education)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지며, 전공의 수련은 임상 역량을 갖춘 전문의를 양성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단계를 담당한다. 역량 중심 의학교육(competency-based medical education, CBME)은 교육의 성과를 시간의 경과나 단순한 경험 축적이 아닌, 학습자가 실제로 갖추어야 할 역량에 중점을 두는 결과 중심 패러다임으로, 현대 의학교육의 핵심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1]. 그러나 국내 전공의 교육은 오랫동안 체계적인 전담 기구 없이 개별 전문과목 학회와 수련병원의 자율적 운영에 의존해 왔다. 2026년 5월 11일, 대한의학회 산하 전공의 수련교육원의 공식 출범은 이러한 구조적 공백을 해소하고 한국형 역량 중심 수련교육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역사적 전환점이다.
목적
이 논문에서는 전공의 수련교육원 출범의 의의와 주요 추진 방향을 국제적 의학교육 동향과의 맥락 속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국내 전공의 교육의 현황과 한계
국내 전공의 수련 체계는 인턴 1년과 전공의 3–4년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졸업 후 의학교육의 표준화, 평가의 체계성, 지속적인 질 관리 측면에서 선진국 대비 현저히 미흡한 수준이었다[
2]. 26개 전문과목 학회와 수련기관이 개별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함에 따라, 수련의 질이 수련기관 및 전문과목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였다.
특히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에 따른 수련 시간 단축은 기존의 도제식(apprenticeship) 수련 방식만으로는 전공의의 임상 역량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3]. 근무시간 단축은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라, 전공의 교육의 패러다임 전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내포한다. 위원회와 태스크포스 중심의 한시적 운영 방식은 교육 성과의 축적과 제도적 연속성 유지 그리고 전문성 심화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 왔으며, 전문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담 기구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역량 중심 졸업 후 의학교육의 국제적 동향
국제 의학교육계는 이미 역량 중심 교육으로의 전환을 선도해 왔다. CBME는 학습자가 성취해야 할 역량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평가·인증하는 결과 중심 교육 모델이다[
1]. 캐나다의 CanMEDS 프레임워크는 의사의 7가지 핵심 역할—의학전문가, 의사소통자, 협력자, 리더, 건강 옹호자, 학자, 전문직업인—을 제시하며 전 세계 졸업 후 의학교육의 표준이 되어 왔다[
4]. 미국의 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 역시 마일스톤(milestone) 체계를 도입하여 전공의 역량 발달을 단계별로 추적하고, 이를 환자 안전 및 의료 질 향상과 직접 연계하고 있다[
5].
국내에서도 일부 전문과목에서 CBME 도입 시범 사업을 시행한 결과, 교육 환경 개선 및 전공의 만족도 향상에 긍정적 효과가 보고된 바 있다[
6]. 이는 한국 의료 현실에 맞는 역량 중심 수련교육 체계의 도입이 충분히 실현 가능함을 보여 주는 중요한 근거이다. 더 이상 국제적 흐름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실정에 맞는 수련교육 모델을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시점이다.
전공의 수련교육원의 핵심 기능과 추진 방향
전공의 수련교육원은 크게 다섯 가지 핵심 기능을 담당하며, 이는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 체계를 이룬다.
첫째, 현장 적용형 역량 중심 수련 교과과정의 연구·개발이다. 26개 전문과목과 인턴 과정을 포괄하는 표준화된 수련 교과과정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E-러닝 콘텐츠와 웹 기반 전공의 통합 수련교육플랫폼을 구축한다. 수련 환경이나 기관의 차이와 무관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 목표이며, 전공의가 각 수련 연차에서 달성해야 할 역량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둘째, 수련 중 평가(workplace-based assessment, WBA) 체계의 확립이다. WBA는 전공의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수행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평가 방식으로, CBME의 핵심 구성 요소이다[
7]. 미니 임상수행평가(mini-clinical evaluation exercise), 직접관찰 술기평가(direct observation of procedural skills), 다면평가(multi-source feedback), 증례 기반 토론(case-based discussion) 등 다양한 도구를 결합한 WBA 체계는 단순한 필기 시험 중심의 평가를 넘어 교육과정 자체를 질적으로 개선하는 형성적 평가 기전으로 기능한다[
8]. 특히 e-portfolio와 연동된 종적 평가 체계는 전공의 개인의 역량 발달 궤적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전문의 자격시험과의 체계적 연계를 가능하게 한다[
9]. 평가 후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피드백은 전공의의 학습 동기를 강화하고 자기주도적 역량 개발을 촉진하는 핵심 기전이다.
WBA 체계의 확립에는 WBA 평가 지표 개발, 시기 및 총괄 평가 방식 개선, 수련교육 과정과 평가 결과를 모니터링하는 e-portfolio 개발 등도 포함된다. 이를 통해 역량 중심의 수련 평가 체계를 구축하여 전공의 수련의 질을 높이고 환자 안전을 강화하고자 한다.
셋째, 지도전문의 역량 강화다. 트레인 더 트레이너(Train-the-Trainer) 모델에 기반한 지도전문의 교육은 수련 질 향상의 근본 동인이다[
10]. 지도전문의가 효과적인 교육자이자 평가자로 기능할 때, 전공의 수련의 실질적인 질 향상이 가능하다. 표준화된 교육 프로그램, 명확한 역할과 책임의 규정, 그리고 적절한 보상 체계가 병행될 때, 지도전문의 제도는 비로소 내실화될 수 있다. 지도전문의 역할과 책임 및 평가 체계 개발, 전공의 수련교육 표준 가이드라인 및 지침 개발, 지도전문의 제도의 효과적 적용 및 정착을 위한 적절한 보상체계 개발, 지도전문의 기본 및 전문 역량 교육프로그램 개발, 지도전문의 온라인 교육 콘텐츠 및 프로그램 개발 등이 필요하다. 교육자를 교육하는 것이 곧 수련의 질을 결정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도전문의를 잘 교육해 역량을 높이는 것이 수련의 질을 높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넷째, 교육 연수 기능이다. 지도전문의 역량강화 워크숍 기획 및 운영, 지도전문의 역량 강화를 위한 오프라인 및 온라인 연수 교육 운영, 술기 교육과 시뮬레이션 교육을 통한 전공의 연수 등이 포함된다. 임상 현장에서의 학습을 보완하는 시뮬레이션 교육은 환자 안전과 술기 역량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교육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 온·오프라인 연수 교육의 체계적 운영을 통해 전공의의 핵심 역량 개발을 다양한 경로로 지원할 것이다.
다섯째, 수련기관 평가 기능이다. 교육수련병원의 전문과목별 평가, WBA 실태 조사 등 수련의 질 관리 활동, 지도전문의 사업 평가 지표 개발 등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질 관리, 질 향상 활동이 포함된다. 수련병원 및 전문과목별 체계적 평가를 통해 교육의 질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질 지표에 기반한 환류 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우수 수련기관을 육성하고 기관 간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어느 수련병원에서 수련받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갖춘 전문의를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지속 가능한 교육 생태계를 향하여
전공의 수련교육원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대한의학회와 26개 전문과목 학회, 수련병원, 보건복지부 간의 긴밀한 협력 체계가 필수적이다. 학회의 전문성과 임상 현장의 경험, 정책적 지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기준을 세우고 미래를 바꾸는’ 지속 가능한 교육 생태계가 실현될 수 있다. 또한 해외 졸업 후 의학교육 기관과의 교류 및 협력을 통해 한국형 수련교육 모델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2].
전공의 수련교육원은 단순한 조직 신설이 아니라, 우리나라 수련교육 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공의 수련교육원이 교육 연구와 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기구로 기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의 효과를 측정하고, 근거에 기반하여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새로운 교육 기술과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학습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이기에, 지금 이 순간의 설계가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질 미래 의료 인력의 역량을 결정할 것이다.
결론
전공의 수련교육원의 출범은 오랜 숙원이었던 졸업 후 의학교육 전담 체계를 구축하는 역사적 첫걸음이다. 전공의 수련교육원은 전문과목 학회의 수련교육을 총괄·조율하고 표준화 방향을 제시하며, 전공의 수련교육 및 평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며, 지도전문의 제도 및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관리하여, 한국형 지도전문의 제도를 정착하고 역량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역량 중심 교과과정 개발, WBA 기반 평가 체계 확립, 지도전문의 역량 강화, 교육 연수 기능, 수련기관 평가라는 핵심 축을 중심으로 전공의 교육의 표준화와 질 향상을 실현하고, 궁극적으로는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 향상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전공의 교육 생태계 구축을 향한 여정이 이제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전공의 수련교육원이 한국 졸업 후 의학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는 중심축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