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의사 현봉학 선생을 기리며

Commemorating Dr.Bonghak Hyun - medical doctor, humanist, and Korean war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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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Korean Med Assoc. 2015;58(4):271-272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15 April 16
doi : https://doi.org/10.5124/jkma.2015.58.4.271
우태하·한승경 피부과
Drs.Woo&Hann's Skin Center, Korea.
Corresponding author: Seung Kyung Hann. skhann007@daum.net
Received 2015 January 12; Accepted 2015 January 26.

서론

지난해 말 개봉되어 1,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 많은 관객들이 도입부에 항구에 모인 피난민 철수를 미군 장군에게 간청하는 한 청년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며 화제에 올랐다. "이대로 철수하면 저 사람들 다 죽습니다."며 호소하던 영화 속 실존 인물이 故 '현봉학' 의학박사임을 아는 의사들이 많지 않다. 현대 임상병리학의 개념과 교육, 그리고 체계화된 검사실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현봉학 선생은 "한국의 쉰들러"로 추앙되며 지난 해 국가보훈처가 발표하는 6.25전쟁 영웅에 선정되기도 한 의학자이다.

함경북도 함흥에서 성장기를 보낸 현봉학 선생은 1941년 세브란스의전에 입학 후 방대한 내용의 병리학분야를 명료하고 열정적으로 강의하던 '윤일선' 교수에게 감화되어 전공을 병리학으로 선택한다. 대학졸업 후 평양기독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현봉학 선생은 해방 후 공산치하의 압제를 피해 가족과 함께 서울로 월남한다. 이때 영어교사로 만난 '윌리엄스' 부인은 현봉학 선생의 학문과 인생 항로에 큰 전환점을 마련해준다. 현봉학 선생의 높은 학업 성취력과 열정을 본 윌림엄스 부인이 자신의 아들인 '조지 윌리엄스'가 병리학 교수로 있던 미국 버지니아주립의대로 유학을 권하고 필요한 수속과 여비까지 마련해주었다. 2년간의 유학 후 모교로 돌아온 현봉학 선생은 임상병리학 강의를 개설하는 한편, 세브란스병원에 최신 임상병리 검사실을 마련했다. 그러나 수개월 만에 발발한 6.25전쟁으로 국내 임상병리학 발전을 이루겠다는 현봉학 선생의 꿈은 꺾이고 만다.

1950년 12월 중공군 참전으로 전황이 불리해진 유엔군이 함흥에서 철수를 서두르자 뒤따르던 10만 여 명의 피난민도 부두로 몰려들었다. 당시 미 제10군단 민사부 고문관으로 참전 중이던 현봉학 선생은 '알몬드' 사령관에게 기나긴 간청을 통해 군수물자를 버리는 대신 피난민 전원을 군함과 지원선을 통해 거제도로 후송하는 기적을 일군다. 휴전 직전 다시금 도미한 현봉학 선생은 미국 펜실베니아의대에서 의학박사를 받고 콜럼비아의대와 토마스제퍼슨의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미국의학회지와 미국병리학회지 편집위원을 지냈다. 특히 스승인 윌리엄스 교수의 뒤를 이어 미국 내 최고의 임상병리학자로 자리매김 한 현봉학선생은 미국 임상병리학회 (ASCP)가 주는 세계적 권위의 '이스라엘 데이비슨상'을 수상했으며, 오래 동안 연구하던 뉴저지 뮐렌버그병원은 선생의 업적을 기려 병원 병리학연구실을 "현봉학 임상병리교실"로 명명하기도 했다.

아버님의 산소와 친척을 두고 온 실향민으로서 누구보다 이산가족의 슬픔을 잘 알고 있었던 현봉학 박사는 10만 여명의 피난민 탈출을 도왔지만, 결과적으로 100만 명의 이산가족을 생겨난 것에 대해 항상 가슴 아파하였다. 이 때문에 현봉학 선생은 "1950년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가져온 공로에 대해 가족에게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다양한 방면에서 이산가족 만남과 통일운동에 자신이 기여할 바를 조용히 찾았다. 또한 중국 연변의과대학 명예교수로 자주 중국을 방문한 선생은 방치된 '윤동주' 시인의 정확한 묘소를 찾아 정비하고 현지에 '윤동주 문학상' 제정하여 시인의 글과 정신이 계속 전해지도록 했다. 또한 서재필선생 기념재단을 미국에서 설립하는 한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다양한 통일운동에도 참여한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현봉학 선생은 자신의 오랜 터전이었던 뮐렌버그병원에서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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