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흡충류 감염기전에 대한 고찰

Infection patterns of trematode parasites among Joseon people

Article information

J Korean Med Assoc. 2014;57(10):866-875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14 October 31
doi : https://doi.org/10.5124/jkma.2014.57.10.866
1Institute of Forensic Medicin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2Department of Parasitology, Dankook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Cheonan, Korea
3Department of Parasitology and Tropical Medicine,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기호철1orcid_icon, 신동훈1orcid_icon, 서민2orcid_icon, 채종일,3orcid_icon
1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2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
3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
Corresponding author: Jong-Yil Chai E-mail: cjy@snu.ac.kr
Received 2014 July 17; Accepted 2014 July 31.

Trans Abstract

While paleoparasitologists in Korea reported scientific evidences for the infection patterns of various parasite species among the pre-modern Joseon people, historical study is also needed for understanding the socio-cultural aspects of parasitic infections of the past. In this study on the historical documents, we revealed the socio-cultural environment of Joseon society by which people were easily infected by trematode parasites. The historical records showed that Joseon people enjoyed raw fish cuisines, that might have caused Clonorchis sinensis and Metagonimus yokogawai infection, much more frequently than originally expected. It is also prven that Joseon people ate raw crab and crayfish, the intermediate host of Paragonimus westermani, as the seasonal delicacy or miracle cure drug for incurable diseases. We also found many Joseon records on raw-oyster dishes, possibly having caused Gymnophalloides seoi infection among the people. By this study, we could get the historical clues on how Joseon people could have been infected by various trematode parasites.

서론

다양한 환경조건에 따라 기생충 감염의 종류와 그 감염률이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 변화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대의 변천에 따른 기생충 감염 실태에 대한 과학적 자료를 축적하는 것은 사람 기생충에 대한 전반적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명확히 구명하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기생충 감염예방 및 치료법이 나오기 이전 시대의 기생충 감염실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데, 이는 전통적 기생충 연구기법만으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수습된 시료에 대하여 기생충학적 연구를 수행하여 과거 기생충 감염실태를 과학적으로 구명하고자 하는 고고기생충학적 연구기법(paleoparasitological study)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따르면 기생충학자는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얻어진 시료에 대하여 다양한 분석을 시행하여 과거 기생충 감염실태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획득할 수 있는데 이는 사람 기생충 감염실태를 시간의 변천에 따라 과학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연구진은 2007년부터 우리나라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수습된 다양한 시료를 대상으로 고고기생충학적 연구를 수행하여 우리나라 과거 기생충 감염실태를 유추할 수 있는 일련의 과학적 증거를 얻었다[1-6]. 이러한 연구성과가 축적됨에 따라 과거 막연한 추정에만 의존하던 우리나라 근대 이전 기생충 감염실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고고기생충학적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흡충(trematode)에 감염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Table 1), 간흡충(Clonorchis sinensis)과 폐흡충(Paragonimus westermani)의 경우에는 그 감염률이 무려 27.8%에 달하였다[6]. 물론 흡충 감염은 검사지역에 중간숙주의 존재여부와 생식습관의 유무 등 지역에 따른 편차가 클 것이라 예상 되므로 일괄적으로 조선시대에 매우 높은 감염률이 유지되었을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처럼 고고기생충학적 연구에서 흡충 감염이 빈번히 확인된 다는 것은 조선시대에도 이 기생충질환이 심각한 건강문제의 하나였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Trematode infection cases of Joseon people based on paleoparasitological reports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분석 정보만으로는 조선시대 흡충 감염이 어떠한 이유로 이처럼 자주 관찰되는 것일까 하는데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남아 있는 문헌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사를 구체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당시 흡충류 감염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적 정황을 파악하고자 하는 역사문헌학적 고찰은 관련 연구자에게 매우 중요하다[7]. 임상의학적 역학조사(epidemiological study)가 조선시대의 높은 흡충류 감염 원인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연구야 말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현실적으로 거의 유일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겠다.

본 연구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현존하는 조선시대 문헌을 폭넓게 고찰하여 조선시대 흡충류 감염이 높게 유지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사회적 조건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대상 및 방법

흡충류의 공통적인 생활사를 보면 제1 중간숙주는 패류(snails)를 선택하며 제2 중간숙주는 흡충 별로 다양한 상이한 종을 선택하기 때문에 종숙주인 사람이 이에 감염되려면 제2 중간숙주가 포함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섭취하여야 한다[8]. 따라서 종숙주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중간숙주를 날로 섭취하여 기생충에 감염되는가 하는 상황만 정확히 역사문헌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다면 조선시대 흡충 감염의 기전을 규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할 것이다.

본 연구진이 고고기생충학적 연구를 통하여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 감염률이 높았던 것으로 확인한 흡충은 폐흡충, 간흡충은 물론, 요코가와흡충, 참굴큰입흡충과 같은 소형 장흡충(minute intestinal trematode) 등이었는데 이 중 폐흡충과 간흡충이 조선시대 시료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었지만 다른 두 흡충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었다[6].

이에 본 연구진은 상기한 4종 흡충류 감염의 제2 중간숙주가 사람에 의해 섭취되는 과정을 조선시대 문헌에서 포착하기 위하여 각 흡충 감염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중간숙주가 어떤 것인지를 먼저 확인하였다(Table 2). 다음으로 제2 중간숙주를 날로 섭취하여야 해당 흡충 감염이 가능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중간숙주를 익히지 않고 요리로 만들거나 그대로 섭취한 사례를 조선시대 사료에서 확인하고자 하였다. 연구에 사용된 조선시대 문헌은 Appendix 1에 따로 요약하였다.

Trematode parasites, intermediate hosts and possible routes of infection (Joseon period)

결과 및 고찰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당시 사람들은 민물에서 나는 어패류 및 갑각류를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보다 훨씬 즐겨 먹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 일상화 되어 있는 날것 상태의 민물 식재료 섭취는 다음 기록에서 잘 볼 수 있다.

징거미〔川蝦〕는 바로 하천의 수염이 길고 발이 긴 새우이다. 큰 것은 몇 치쯤 되는데 살이 통통하고 흑갈색이다. 어부가 투망질을 하여 물고기를 잡을 때 고기 사이에 섞여 나오는데 소금에 절이려고 생각도 않고 회 삼아 산채로 삼킨다〔川蝦, 卽川中長鬚長足蝦。大可數寸, 甚肥, 色黑褐。漁人綱漁, 與魚間出, 活喫爲膾, 不藉鹽醬。〕 (『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篇 服食類 諸膳」).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와 같은 질박한 식습관은 당시 사회에서 흡충류 감염률을 높이는 원인의 하나였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흡충류 감염에 영향을 준 날것 상태의 어패류 및 갑각류 섭취는 위와 같이 단순한 방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민물 어패류 및 갑각류를 익히지 않고 음식이나 약제로 사용한 사례도 많아 날것 상태의 민물 식재료를 해당 시기 사람들이 섭취할 기회는 생각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8]. 조선시대 문헌에서 흡충류 감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례를 식재료 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민물생선

우리나라 흡충 감염의 가장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민물 생선을 날로 먹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선회를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먹지 않았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야 비로소 일본의 조리법이 들어와 정착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선시대 의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를 보면 “대체로 생선회는 날 것이며 찬 음식이라 먹으면 입이 개운하기에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凡魚鱠是生冷之物, 食之利口, 所以人多嗜之〕.” (卷163 「聖惠方2 治食魚鱠中毒諸方」)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생선회는 의외로 오래전부터 즐기던 요리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문헌에는 생선회를 즐기는 기쁨을 한시로 노래하는 등 이에 자세한 기록이 보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Appendix 2).

조선시대 기록을 검토하면 횟감이 된 생선 어족의 종류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이로부터 실제로 흡충 감염과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생선 종류를 구체적으로 유추정해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즐겼던 민물생선회 중 이러한 예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잉어과 어족인 붕어회이다. 기록을 보면 사대부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붕어회가 안주로 오르기도 했고, 조정에서도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가 수라(水刺)를 잘 들지 못하자 홍봉한(洪鳳漢, 1713-1778)이 붕어회를 권한 내용이 보이는 등 조선시대 당시 붕어는 횟감으로 많이 사랑 받았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Appendix 2).

붕어 외에도 요코가와흡충의 중간숙주인 은어〔銀口魚〕 역시 조선시대에 회로 즐긴 기록이 많이 보이는 생선이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편지에서 “그대는 흥이 일거든 한번 찾아 주시구려. 이 동산에 그득한 죽순이며 소채 배불리 먹고, 한 줄기 개천의 은어는 되는대로 회를 쳐서 맑은 못 곡수(曲水)에서 참말로 술잔을 띄워 흘려 봅시다〔願足下乘興而來。喫緊此滿園筍蔬, 鱠錯一川銀口魚, 眞正流觴泛巵於淸池曲水之上。〕.” (朴趾源 『燕巖集』 卷3 「孔雀館文稿書 與人」)라고 하여 은어회를 즐기는 소회를 표현하였다. 한편, 농어 역시 이형흡충류(heterophyid trematodes)의 중간숙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회로 요리하여 먹는 내용도 당시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丁若鏞 『茶山詩文集』 卷6詩 「松坡酬酢」).

이 외에도 웅어, 가물치, 쏘가리 등 다양한 민물고기를 횟감으로 즐긴 내용이 조선시대 문헌에 확인된다. 붕어나 은어와 달리 이들 생선은 기생충 감염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이 그만큼 다양한 민물 어족을 생선회로 먹었다는 방증은 될 수 있으므로 이 시기 흡충 감염과 관련하여 암시하는 바가 많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생선회에 대한 기록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생선회 조리법까지 자세하게 다루어진 경우도 많다. 조선 전기의 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붕어회〔鯽膾〕」라는 시에서 붕어회를 채를 썰 듯 가늘게 썰어 먹었다고 하였다. 이 외에 몇 가지 양념을 함께 써서 생선회를 조리 해먹은 경우도 기록에 보인다. 성현(成俔, 1439-1504)은 자신의 시에서 은어회를 먹는 모습을 노래했는데 은어를 간단하게 회를 썰어 양념에 채소를 곁들여 먹었다고 한다. 또 다른 조리법 중에는 회 친 생선을 간장, 겨자, 생강 등으로 양념하여 먹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 등 오늘날의 생선회 조리법과 일견 상당히 유사한 장면도 많아서 조선 시대에 생선회를 즐기는 음식문화가 상당히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Appendix 3).

요약하면 생선회의 경우 일제 강점기 이후에나 많이 먹었으리라는 통념과는 달리 역사문헌을 상고해 보면 조선시대에 이미 다양한 민물 어족을 회로 조리하여 많이 즐기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음식은 조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겠지만, 흡충 감염률 역시 이로 말미암아 함께 높아졌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 민물 게

고고학 발굴에서 얻어진 조선시대 고고기생충학 시료에서 상당히 많은 폐흡충 감염 사례가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에게 이 질병이 만연했다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6]. 폐흡충은 주로 민물 갑각류(가재, 게 등)를 생식할 때 감염되는 질병임을 감안할 때 조선시대 폐흡충 감염률이 높았던 사실은 당시 사람들이 이들 갑각류를 날로 많이 섭취하는 사회적 조건 아래 놓여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 폐흡충 감염원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민물 게인데, 그중에서도 게의 생식과 관련하여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음식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게젓과 게장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게를 익히지 않고 날것 상태에서 게장으로 조리하여 즐긴 기록이 많은데 이르게는 조선 초 서거정이 지은 「촌주팔영(村廚八詠)」이라는 연작시에 이미 게젓〔蟹醢〕을 노래한 부분이 있다(Appendix 4).

조선시대에는 게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담갔을까? 이에 대해서는 『산림경제(山林經濟)』,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및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 자세한 조리법이 전해진다. 이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장초 게장〔醬醋蟹〕, 간장 게장〔醬蟹〕, 소금물 게장〔鹽湯蟹〕, 법해(法蟹), 술에 재운 게장〔酒蟹〕 등 다양한 종류의 게장이 만들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소금물, 간장, 식초, 술지게미 등 식재료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게장의 경우 간장이나 소금물처럼 짠 재료에 상당히 오래 담가둔 후 비로소 먹기 시작하기 때문에 과연 이를 먹고 폐흡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았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증보산림경제』를 보면 조선시대에 반드시 오래 담가두었다 먹는 게장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담근 지 아주 짧은 시간만 경과해도 바로 먹을 수 있는 게장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Appendix 4)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민간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게장 만드는 법을 그대로 채록해 놓았다는 ‘장해속법(醬蟹俗法)’은 주목할 만하다. 이 게장 조리법에서 중요한 점은 소금, 간장 등을 이용하여 담근 지 5, 6일이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는 살아 있는 폐흡충 피낭유충에 의한 감염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므로 조선시대 민간에서 이 방법대로 게장을 담가 먹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았다면 폐흡충 감염 확률이 이로 인해 매우 높아졌을 것이다.

3. 민물 가재

민물 게뿐 아니라 민물 가재의 경우도 날것으로 섭취하면 조선시대 폐흡충 감염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홍역(紅疫)을 앓을 때 민물 가재를 날로 먹으면 낫는다는 민간치료법이 최근까지도 성행하고 있었던 것이 의학계에 잘 알려져 있어 우리나라 전근대 시대 폐흡충 감염 원인의 하나로 이 부분이 곧잘 거론되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기록을 보면 민물 가재를 홍역에 쓰는 치료법은 폐흡충을 유발하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의학자를 중심으로 반복 제기된 부분이 보이고, 같은 지적은 1960년대, 1970년대까지도 언론에 계속 확인되므로 이 전통은 상당히 최근까지 지속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기록을 상고할 때 홍역에 가재즙을 처방하는 치료법은 1871년에 간행된 『의휘(宜彙)』의 기록에서 처음 보이는 듯하다. 이에 의하면 “홍역이 돌 때에는 석해를-가재-즙을 내어 뜨뜻하게 하여 이를 복용한다. 전염되지 않은 사람은 더러 모면할 수 있고, 이미 걸린 사람은 증세가 경미해진다〔疹疫輪行時, 石蟹【가ᅐᆡ】取汁, 微溫服之。不染者或得免, 已中者卽輕。〕.” (錦里散人, 『宜彙』 卷4 「麻疹經驗 紅疹新方」, 1871)라고 하였다. 이 기록을 보면 홍역 치료를 위해 가재즙을 복용하는 전통은 최소한 19세기 후반까지는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가재를 날로 즙을 내어 먹는 치료법은 홍역에만 이용되었는가? 그렇지는 않은 듯하고 홍역 외에도 다양한 질병 치료제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인후(咽喉) 질환에 사용하는 28종의 단방(單方)이 있는데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처방이 있다. 이 처방을 따를 경우 조선시대 인후통 환자에게 가재즙이 치료제로 제공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석해(石蟹)를 쓴다. ○ 목구멍이 부어서 막힌 것을 치료한다. 찧어 짜서 즙을 내어 흘려 넣으면 바로 트인다〔石蟹 ○ 治咽喉腫塞。擣絞取汁灌之卽開。 【本草】〕.” (許浚 『東醫寶鑑』 「外形8 咽喉」)

조선시대에 가재즙을 처방하던 질병에는 홍역과 인후통 외에 이질도 있었던 것 같다. 1790년(정조14)에 이경화(李景華, 1721-?)가 함경도 관찰사 이병모(李秉模, 1742-1806)의 의뢰로 편찬한 『광제비급(廣濟秘笈)』을 보면 적리(赤鯉)로 피고름이 겹쌓이고 이급(裏急)으로 뒤가 묵직하며 밤낮으로 계속 설사를 할 때에는……또 석해를-가재- 짓찧어 즙을 내어 묽은 간장을 넣어 국을 만들어 공복에 마신다〔赤痢, 膿血 稠疊, 裏急後重, 日夜無度,……又石蟹【가재】擣取汁, 淡醬作羹, 空心服。〕. (李景華 『廣濟秘笈』 卷2 「雜病」) 라고 되어 있어 적리(아메바성 이질)의 치료에 가재즙을 처방하였던 듯하다. 이러한 처방은 『단방비요경험신편(單方秘要經驗新編)』등 조선 말, 일제강점기 의서에까지 계속 보여 상당히 후대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당시 의서에 나오는 처방에 따라 가재즙을 의료용으로 처방한 사례가 어느 정도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의서대로 홍역, 인후통, 적리 등을 앓는 환자에게 가재즙을 처방하였다면 이 부분이 당시 우리나라 폐흡충 감염률을 높이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4. 생굴

참굴큰입흡충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확인되어 국제학계에 보고된 흡충으로서 한반도 남서부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된 2차 중간숙주가 분포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실 참굴큰입흡충 감염의 지역적 분포는 조선시대라고 해서 큰 차이를 보일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참굴큰입흡충에 감염된 2차 중간 숙주가 분포한 남서부 도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인 경남 하동과 충남 서천지역에서 조선시대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이로부터 얻은 분변 샘플에서 놀랍게도 참굴큰입흡충이 확인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참굴큰입흡충 감염이 지금보다 훨씬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여 한반도 서해안 및 남해안 상당 부분이 이 기생충의 감염권 안에 포함되어 있었고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그 분포 범위가 점차 축소되어 오늘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2,5].

참굴큰입흡충 감염의 2차 중간숙주가 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흡충에 감염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은 현지 생산된 굴이 참굴큰입흡충에 오염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채취 한 굴을 익히지 않고 섭취하는 식습관이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 중 전자의 경우 현재로서는 그 오염유무를 알 방법이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조선시대 문헌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굴을 어떻게 조리하여 먹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증보산림경제』에 아래와 같이 상세히 나와 있다.

굴〔石花〕: 이른 봄이나 가을, 겨울에 먹을 수 있다. 초장으로 회를 만들어 먹으면 맛있지만, 그 성질이 너무 차서 밥 위에 쪄서 소금을 뿌리고 바로 먹으면 맛이 좋다. 특히 두붓국에 넣어 함께 삶으면 좋다. 혹자는 손질하여 껍데기를 제거하고 소금을 조금 뿌려 따뜻한 방에 며칠 두었다가 고춧가루〔蠻椒〕를 넣어 먹는다〔石花:早春及秋冬可食。以醋醬作膾則佳, 而性太冷, 或蒸於飯上, 和鹽卽食佳。又宜加於同煮豆腐羹中。或治去辟甲, 少和鹽, 置溫房數日, 加蠻椒食之。〕. (柳重臨 『增補山林經濟』 卷9 「治膳 下 石花」)

이에 의하면 굴을 먹는 방법에는 날 것 그대로 양념을 하여 먹는 방법, 밥과 함께 삶거나 쪄서 먹는 방법, 소금을 쳐두고 며칠 지나 고춧가루와 함께 먹는 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 밥과 함께 쪄 먹는다면 참굴큰입흡충의 감염에 별로 관련이 없겠지만 회로 만들어 먹거나 따뜻한 방에 며칠 숙성시켜 두었다가 먹는 경우가 역시 문제이다. 굴을 날로 먹는 방법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며 굴젓을 담아 먹는 방법도 있었다. 이 방법 역시 참굴큰입흡충의 감염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조리법을 아래에 적어둔다.

굴젓 담그기〔沉陳石花醢法〕: 굴 1말에 소금 7되를 넣는데, 켜켜이 굴을 깔고 소금을 뿌려 항아리 주둥이까지 가득 채운다. 기름종이로 단단히 봉해서 해가 들지 않는 처마 밑에 항아리를 두면 1년이 지나서 먹어도 맛이 좋다〔每石花一斗, 加鹽七升, 爲層層隔鋪, 滿至甕口。以油紙堅封, 安甕於不照日之廊下, 周年而食之佳。〕. (柳重臨 『增補山林經濟』 卷9 「治膳 下石花」)

참굴큰입흡충에 감염된 조선시대 미라 사례는 현재까지 총 2구(柩)가 확인되었는데, 두 경우 모두 바닷가와 매우 가까운 지역이어서 피장자는 생굴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논문에서 보듯이 생굴을 회나 굴젓으로 생식하는 습관이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 폭넓게 퍼져 있었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해안 지역 사람들은 생굴 섭취를 통해 참굴큰입흡충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많았으리라고 판단된다.

결론

본 논문은 흡충류 중간숙주로 알려진 민물 생선, 민물 가재, 민물 게, 굴 등을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날것인 상태에서 섭취하고 있었는지 그 구체적인 상황을 해당 시기 문헌을 통해 밝혀 조선시대 흡충류 기생충 감염률을 높게 유지하게 한 기전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산물을 날로 먹는 습관은 일본을 통해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는 일반적 통념과 달리 생각보다 훨씬 일찍부터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 보편화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조선 사람들은 민물 어패류와 갑각류를 날 것인 채로 즐기면서 우리나라 음식문화를 한층 풍요하게 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이러한 식습관은 해당 시기 사람들 사이에 높은 흡충류 기생충 감염률이라는 반대급부를 어쩔 수 없이 치르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Acknowledgements

This work was supported by a research grant of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policy research-2013-003-academic infrastructure promotion) and the Korean Feder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Societies (KOFST-2013),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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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hai JY, Hong ST, Choi MH, Shin EH, Bae YM, Hong SJ, Sohn WM, Yu JR, Koh WG, Seo M, Park YK, Han ET. Clinical parasitology Seoul: 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 2011.

Peer Reviewers’ Commentary

이 논문은 조선시대 유적에서 자주 발견하는 흡충류 충란으로 미루어 조선시대 선인이 다양한 흡충 감염이 유행하였을 것이라는 가설을 식습관 문헌 고찰로 뒷받침하였다. 중간숙주인 붕어, 은어, 가제, 게, 굴 등을 생식하는 조리법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을 잘 기술하여, 이런 생식이 감염경로를 모르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식습관으로 자리 잡았기에 흡충 감염이 발견된다고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흡충증이 풍토병으로 한반도 내에 존재하는 것이 이런 식습관 행태 때문임을 알 수 있으며, 아직도 그런 행태가 남아 있으므로 의사학과 역학 관점에서 흥미롭다.

[정리: 편집위원회]

Appendices

Appendix 1. Joseon period historical documents studied in this study

Appendix 2. Enjoying freshwater raw fishes: examples described in joseon period documents

Appendix 3. Recipes for raw fish dishes described in joseon period documents

Appendix 4. Recipes for pickled or marinated crab described in joseon period documents

Article information Continued

Table 1.

Trematode infection cases of Joseon people based on paleoparasitological reports

Cases Estimated date Trematode eggs identified
Hadong-1 17C Clonorchis sinensis, Metagonimus yokogawai, Gymnophalloides seoi
Hadong-2 16C to early 17C Paragonimus westermani
Waegwan 1685 C. sinensis
Yongin 15C-16C P westermani
Yangju child 1640-1700 C. sinensis
Gongju 1-2 17C-18C P westermani
Sapgyo 16C C. sinensis, G. seoi, M. yokogawai
Dangjin 1633 P westermani
Sacheon 1620-1630 M. yokogawai
Jinju 15C-16C P westermani
Mungyeong 1647 C. sinensis

C, century.

Table 2.

Trematode parasites, intermediate hosts and possible routes of infection (Joseon period)

Trematode Intermediate host Possible route of infection
Paragonimus westermani Eriocheir sinensis Marinated crab (gejang)
E japonicus Crayfish juice (gajaejeup)
Cambaroides similis
Metagonimus yokogawai Plecoglossus altivelis Raw fish
Tribolodon sp.
Gymnophalloides seoi Crasostrea gigas Raw oyster
Clonorchis sinensis family Cyprinidae Raw fish
Pseudorasbora parva
Carassius auratus
Cyprinus carpio
Pseudogobio esocinus
Gnathopogon coreamus
Culter erythropterus
Sarcocheilicthys sinensis
Hemibarbus labeo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금리산인(錦里散人) 『의휘(宜彙)』
김창협(金昌協) 『농암집(農巖集)』
박지원(朴趾源) 『연암집(燕巖集)』
서거정(徐居正) 『사가집(四佳集)』
서명응(徐命膺) 『고사신서(攷事新書)』
성현(成俔) 『허백당시집(虛白堂詩集)』
신용개(申用漑) 편(編) 『속동문선(續東文選)』
신유한(申維翰) 『청성선생속집(靑泉先生續集)』
신해용(申海容) 『단방비요경험신편(單方秘要經驗新編)』
유중림(柳重臨)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이경화(李景華) 『광제비급(廣濟秘笈)』
이규경(李圭景)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이정구(李廷龜) 『월사집(月沙集)』
장유(張維) 『계곡집(谿谷集)』
전순의(全循義) 『식료찬요(食療纂要)』
전순의(全循義) 등 『의방유취(醫方類聚)』
허준(許浚) 『동의보감(東醫寶鑑)』
홍만선(洪萬選) 『산림경제(山林經濟)』
황윤석(黃胤錫) 『이재난고(頤齋亂藁)』
Original text Translation into Korean Reference
漁人網集松下潭, 어부들 족대로 솔 그늘진 못으로 훑어오니, 이정구(李廷龜, 1564-1635) 『月沙集』 卷11 「한강에서 고기잡이를 구경하며 정사의 시에 차운하다〔漢江觀漁 次正使韻〕」
潭淸魚可數洪纖。 물 맑아 고기 좋고 크고 작은 놈 셀 정도네 .
有時得雋語爭囂, 어쩌다 월척 걸리면 너도나도 시끌벅적,
錦鱗潑剌抽淵潛。 금빛 비늘 팔딱이는 놈 깊은 물에서 건지네.
大者燖之小者鱠, 큰 놈은 불 지펴 삶고 작은 놈 회를 치니 ,
紅縷銀絲迷眼界。 붉은실 은빛실 회가 눈에 아련히 뵈어라
晨往南溪觀打魚, 아침에 간 남계 가에서 구경한 고기잡이 장유(張維, 1587-1638) 『谿谷集』 卷30 「남계에서 고기잡이를 구경하다〔南溪觀魚〕」
決開積水群鱗枯。 가두어 둔 물을 빼니 물고기들 할딱할딱.
銀刀玉尺大狼狽, 은도며 옥척들에겐 낭패 중의 낭패인데
長乂巨網爭喧呼。 작살질 그물질하며 너도나도 소리치네.
漁子效獲憐呴沫, 어부는 잡은 물고기 뻐끔대자 안쓰럽고
庖人斫鱠供腹腴。 요리사 회를 썰어서 맛난 뱃살 건네주네.
人生一飽眞有數, 한번 배불리 먹는 것도 운수가 좋아야지
久客不妨留歡娛。 이런 기쁨 맛본다면 타향인들 어떠하리.
龍江水深處, 황룡강 물줄기 물 깊은 곳들은, 황윤석(黃胤錫, 1729-1791) 『頤齋亂藁』 乙酉年(1765, 영조41) 1月 10日 「용강 김공-영광-의 조어시에 쓴 발〔龍江金公【永光】釣魚詩跋〕」
有魚可釣得。 물고기 노닐어 낚시질 할 만해.
我思一飽喫, 한 번 배 터지게 먹을 생각에,
敲針繫干竹。 바늘 두드려 간짓대에 달았네.
顧謂室中妻, 안방의 아내에게 일러 말하길,
炊飯無太速。 밥일랑 너무 빨리 짓지 마시오.
大魚當作膾, 큰 물고기라면 회를 치고,
小魚當烹熟。 작은 물고기라면 찝시다.
葱醬須覓置 파며 장을 찾아 두시구려,
我還應在夕 내 저녁 되면 돌아오리니.
尹孟玉兄弟、吳生、尹生、嚴琯並來, 會設鮒膾及 酒, 夕罷。 윤맹옥 형제와 오생, 윤생, 엄관이 함께 찾아왔기에 붕어회와 술을 차려 만나서 저녁 때 파하였다. 황윤석(黃胤錫, 1729-1791) 『頤齋亂藁』 丁亥年(1767, 영조43) 6月 6일
洪鳳漢曰:“多日欠和之餘, 脾胃致損故然矣。 홍봉한이 아뢰기를, 『承政院日記』 英祖37年 7月 2日 戊戌.
及今保衛之方, 水刺一節, 第思其何者悅口, “여러 날 편치 않으신 뒤인지라 비위가 손상되어 그런 것입니다. 지금 보위하는 방도는 수라를 잘 드시는 한 가지이니, 어떤 것이 맛이 좋고 어떤 것이 내키는지만 생각해야합니다.”
何者適性焉。 ”令曰:“生鰒似或稱口, 而得之 라고 하니, 왕세자가 이르기를,
未易也。 ”洪鳳漢曰:“累次催促漁人, 而今夕 “생전복이 때로 입에 맞는 듯한데, 구하기 쉽지 않다.”
猶不及, 姑待明朝, 而鮒魚、秀魚、錦鱗魚, 或烹 라고 하였다. 홍봉한이 아뢰기를,
或鱠, 時時進服, 則脾胃可開矣。諸醫所達無 “여러 차례 어부를 재촉했지만 오늘 저녁에도 여전히 오지 않았으니 우선 내일아침을 기다려야 합니다. 붕어[鮒魚], 숭어[秀魚], 쏘가리[錦鱗魚]를 찌거나 회를 쳐서 때때로 드시면 비위가 트일 것입니다. 어의들이 아뢴 바도 똑같습니다.”
異同。” 라고 하였다.
雙鯉傳書日, 잉어 두 마리로 서신 전해온 그날은 서거정(徐居正, 1420-1488), 『四佳集』 卷28, 「민 사문-규(奎)-이 잉어를 보내면서 시를 부쳤으 므로 그 운에 의거하여 받들어 수답하다〔閔斯 文【奎】 送鯉魚, 寄詩, 依韻奉酬〕」 서거정(徐居正, 1420-1488), 『四佳集』 卷28, 「민 사문-규(奎)-이 잉어를 보내면서 시를 부쳤으 므로 그 운에 의거하여 받들어 수답하다〔閔斯 文【奎】 送鯉魚, 寄詩, 依韻奉酬〕」 徐居正, 『續東文選』 卷4, 「漢都十詠 立石釣魚」
三旬抱病時。 달포 남짓 병들어 끙끙 앓던 때였지.
滿盤飛鱠縷, 쟁반 가득 잉어회 실올처럼 흩날리니
沽酒亦何疑。 사온 술이라고 주저할 건 또 무어겠소.
雙鯉傳書日, 잉어 두 마리로 서신 전해온 그날은
三旬抱病時。 달포 남짓 병들어 끙끙 앓던 때였지.
滿盤飛鱠縷, 쟁반 가득 잉어회 실올처럼 흩날리니
沽酒亦何疑。 사온 술이라고 주저할 건 또 무어겠소.
溪邊怪石如人立, 시냇가의 괴석이 사람처럼 섰는데
秋水玲瓏照寒碧。 옥 같은 가을 물 시퍼렇게 비치네.
把釣歸來籍綠蕪, 낚싯대 들고 와 풀밭 깔고 앉으니
百尺銀絲金鯉躍。 1백 자 은실 끝에 금잉어가 높뛴다.
細斫爲膾燖爲羹, 잘게 저며 회치고 국도 끓여 놓으니
沙頭屢臥雙玉瓶。 백사장 머리 두 옥병이 금세 비었네.
醉來鼓脚歌滄浪, 취하여 다리를 치며 〈창랑가〉 부르니
不用萬古麒麟名。 기린각 영원히 남을 공신호 부질없네.
「鯽魚【붕어。一名鮒魚】」 즉어(鯽魚)-붕어. 부어(鮒魚)라고도 한다.- 홍만선(洪萬選, 1643-1715) 『山林經濟』 卷4, 「治藥」
池澤皆有之。色黑而軆促, 肚大而脊隆。又一種, 연못과 수택에 모두 있다. 빛깔은 검고 몸은 짧다. 그리고 배는 크고 등날은 높다. 또 1종(種)이 있는데 등날은 높고 배는 협소한 것으로 바로 붕어다. 효능은 좋지 못하다. 《證類本草》물고기 는 모두 오행(五行)의 화(火)에 소속되었으나 붕어만은 토(土)에 소속되었다. 그래서 위(胃)를 조 절하고 장(腸)을 충실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醫學入門》순채와 함께 국을 끓여 먹으면 위가 약해져서 밥이 내려가지 않는 데 주로 좋다. 회(膾)를 만들어 먹으면 오래된 적백리(赤白痢)에 주로 좋다. 《證類本草》
背高腹狹小者, 卽鯽魚。力差劣。【本草】 諸魚皆
屬火, 惟鯽魚屬土, 故能有調胃實腸之功。【入
門】 合蓴作羹, 主胃弱不下食。作膾主久赤白
痢。【本草】
繫馬衡門得再過, 그대 집 말 타고서 두 번을 찾았는데 김창협(金昌協, 1651-1708) 『農巖集』
春林雉雊夏鸎歌。 봄 숲에 꿩 울고 여름엔 꾀꼬리 소리 「한여중(韓汝重- 위(瑋)-을 곡하다.〔哭韓汝重【㙔】〕」
羹蓴膾鯽猶餘興, 순챗국 붕어회에 이는 흥 적지 않아
作記題詩不盡誇。 시와 기문 지어도 이루 표현 못하였지
Original text Translation into Korean Reference
是夕, 島主送歲饌一盤於船上, 其狀卽余過村 이날 밤 대마도주(對馬島主)가 세찬(歲饌) 한 상을 배에 보내었는데, 그 형편이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촌가를 지날 적에 본 그대로였으니, 까무러칠 만큼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밤에는 장대에 매단 등불이 바다에 빛났고, 세 사신의 배와는 서로 그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였는데, 먼 것은 100여 자[尺]이나 떨어졌다. 서풍이 바다를 흔들어 파도가 일면 이부자리와 베개가 요동하였다. 진호(震浩)를 시켜 간장〔甘醬〕을 걸러서 겨자·생강·신 것·짠 것을 넣어 서 생선회를 조리하고, 쌀을 가루로 빻고 고기를 다져서 떡국을 끓이게 하였다. 申維翰 『 靑泉先生續集』 卷6 「海槎東游錄 丁 酉 12月 29日」
中所見者, 不覺絶倒。入夜燈竿曜海, 三使船相
去或近或遠, 遠可百餘尺。西風撼洋波, 衾枕
搖蕩。使震浩瀝朝鮮甘醬, 具芥薑酸鹹, 以調魚
膾, 硏末搗肉作餠湯。
蠡魚作膾和薑、虀食之 가물치〔蠡魚〕를 회를 떠 생강, 부추와 함께 먹는다. 全循義 『食療纂要』 「諸痔32」 徐命膺 『攷事新書』 卷6 「飪魚肉法」
魚生膾:去尾肚皮薄, 切攤白紙上曬片, 時細 생선회는 꼬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껍질을 벗겨 썰어서 백지 위에 펼쳐 놓아 물기를 말리는데 이때 실처럼 가늘게 썬다. 무를 가늘게 채를 썰어 헝겊에 담아 쥐어 짜내어 생강, 마늘 약간과 머물러 생선회를 접시에 담아서 겨자, 고추, 식초를 뿌린다.
切如絲。以蘿葍[蘿蔔]細刴, 布紐作汁, 薑、蒜少
許拌, 魚膾入楪, 以芥、辣、醋澆。
霜落寒江鯽子肥, 서리 내린 추운 강에 통통 살진 붕어 徐居正 『四佳集』 卷50 第23 「村廚八詠 鯽 膾」)
揮刀雪縷細紛飛。 칼질하니 하얀 살점 실올처럼 날리네
不知放箸盤空盡, 젓가락 놓을 줄 모르고 접시 다 비우니
銀膾頻思杜老詩 두로의 은실 같은 회 자꾸만 생각나네
紫荇穿顋登鼎俎, 자줏빛 마름으로 아가미 꿰어 찜 솥에 올리고 成俔 『虛白堂詩集』 卷11 「詩 與府使 柳季源巡審秋稼, 憩溪上, 看捕銀口 魚, 有作」
鑾刀硏膾芼椒薑 방울 달린 난도로 회 치고 채소에 고추 생강
秋花好占豐年兆 가을꽃은 좋은 점괘니 풍년이 들 조짐이고
邂逅同斟綠蟻觴 우연히 만나 주거니 받거니 술잔 기울이네
Type of dishes Original text Translation into Korean Reference
술지게미게젓〔糟蟹〕 九月, 揀蟹三十介, 去尖, 淨拭乾。糟五斤, 鹽二斤, 醋、酒各半升交沈。七日熟, 留至明春。 9월에 게 30마리를 골라 발끝을 잘라 내고 깨끗하게 닦아 물기를 말린 것을 술 지게미 5근, 소금 2근, 식초와 술 각각 반 되와 교대로 넣어 담는다. 7일이면 익어서 이듬해 봄까지도 둘 수 있다. 柳重臨 『增補山林經濟』 卷9 「治膳 下 治蟹諸方」
밤게젓 〔栗蟹醢〕 此蟹, 春夏之時, 出於畿邑沿海澨及島中, 如安 山、富平及通津、江華、南陽、大阜島等處。其大如母 指頭。海氓男女, 或鹽淹或生蟹, 擔負首戴, 入京 售賣。一文一大碗甚歇, 京人買其生者沈淹, 一如 沈大蟹法。取生活者入缸中, 投調和物料, 灌煮 淸、甘醬, 經一宿, 竝匣脚食之。 이 게는 봄여름에 경기 바닷가와 섬에서 나는데, 안산, 부평이나 통진, 강화, 남 양, 대부도 같은 곳이 그 곳이다. 그중 큰 것은 엄지손가락 끝마디만하다. 바닷가 남녀 백성이 소금에 절인 것이나 살아 있는 게를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서 서울 에 와서 판매한다. 1문에 큰 사발로 한 그릇이니 매우 저렴하다. 서울 사람이 살 아 있는 게를 사서 장을 담그는데, 큰 게〔大蟹〕로 장을 담는 방법과 똑같다. 살아 있는 것을 골라 항아리에 넣고 맛나게 할 양념을 넣어 달인 맑은 간장을 부어 하룻밤을 재워 두었다가 게딱지나 다리까지 모두 먹는다. 『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篇 服 食類 諸膳」
민간의 게장 담는 법 〔醬蟹俗法〕 甘淸醬一斗, 加鹽一升, 牛肉大塊, 同下釜中, 煉 至極鹹。色紫桑汁, 然後取出釜中, 去牛肉不用。以 霜後大蟹五十介, 洗淨拭乾,【蟹要沉活者, 沉死 者則腐傷, 不可食。】 下醬盆中, 而醬要放冷。沉之 過二日後, 傾出醬水, 再煉灌之, 而蟹必仰疊排 下, 投入去目完川椒, 又以好蜜數合灌之, 堅封。 過五六日後可食, 留至明春又不壞, 此方妙甚。 맑은 간장 1말에 소금 1되와 쇠고기 큰 것으로 1덩이를 솥에 넣고 몹시 짜게 될 때까지 졸인다. 자줏빛 오디 즙 색이 되면 솥에서 퍼내는데, 건져낸 쇠고기는 쓰 지 않는다. 서리가 내린 뒤에 큰 게 50마리를 깨끗하게 씻고 물기를 말려-게는 반드시 물에 담가 살아 있는 것이어야지 만약 물에 담가 죽은 것이면 상해서 먹 을 수 없다.- 간장이 담긴 동이에 넣는데 간장은 반드시 차게 식혀야 한다. 담갔 다가 2일 지난 뒤에 장물을 따라 내어 다시 끓여 붓는다. 그리고 게는 반드시 배 를 위로 향하도록 뉘여 차곡차곡 담고 씨를 뺀 온전한 초피를 넣고, 또 좋은 꿀 몇 홉을 부어 단단하게 막는다. 5, 6일 지난 뒤에 먹을 수 있고,이듬해 봄까지 두어도 상하지 않는데 이 방법은 아주 오묘하다. 柳重臨 『增補山林經濟』 卷9 「治膳 下 治蟹諸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