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의료의 개념과 가치, 그리고 한국의 현실과 과제
Concept, values, current status and prospect of primary car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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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rimary care is an essential part of a whole health system. It is the first contact point for medical care in the community, where many people are likely to obtain their own impression of the health system. Primary care has its own attributes, such as first contact, continuity, comprehensiveness, and coordination, which are yardsticks for measuring its excellence. Regarding the value of primary care, many studies have reported extensive evidence of the advantages of primary care at individual and societal levels. Health systems with strong bases of primary care are better than those with weak ones in terms of cost, health outcomes, and quality of care. However, primary care in South Korea has continuously shrunk or been weakened for several decades. As people age and chronic illnesses become prevalent, more attention is being paid to primary care than ever before, and several policy options have been proposed. Therefore, if the medical community wishes to invigorate primary care, it should play a pivotal role in formulating and implementing primary care policies by envisioning primary care, establishing related data infrastructure, and continuing the discussion on long term goals like training primary care physicians.
서론
한국 일차의료는 의료시스템의 첨병 노릇을 해 왔다. 물론 일차의료가 한국 의료시스템의 성과, 나아가 국민 건강수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엄정하게 평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차의료를 보건의료시스템의 첨병이라고 말할 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 또는 추론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동네 의원'은 건강문제를 안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가장 자주, 또 대부분의 경우 가장 먼저 이용하는 의료기관이다. 외국에서는 이와 같은 의료이용행태를 일찍이 '의료의 생태(ecology of medical care)'라는 개념 틀 속에서 정식화한 바 있다[123456]. 이들 연구에 따르면 지난 한 달 동안 인구 천 명당 많게는 329명[6], 적게는 217명[2]이 동네 의원을 이용하였다. 같은 연구들에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7-12명에 불과하였다[123456].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연구가 없지만, 2012년 건강보험 주요 통계에 따르면 의원이 의료기관 내원 일수 기준 건강보험 요양 급여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6.0%(외래 62.3%, 입원 9.7%)인 것으로 나타나 한국인 역시 의원을 빈번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7].
둘째, 동네 의원 또는 일차의료기관의 이용 경험이 의료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한 나라 의료시스템의 우수성은 주로 전문가의 관점에서 평가되어 왔으나, 이것이 실제로 의료를 이용하는 일반인 내지 대중의 만족도와 괴리가 있고[8] 환자로서의 경험이 의료시스템에 대한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910]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의료시스템, 특히 선진국 의료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만족도는 더 이상 건강결과나 의료시스템의 형평성 및 효율성에 대한 인식에 좌우된다기보다 오히려 환자로서의 경험이나 반응성(responsiveness) 같은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11].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양적으로 압도적인 한국인의 동네 의원 이용경험이 의료시스템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추론은 합리적이다.
셋째, 일차의료가 우수한 의료시스템의 성과가 그렇지 않은 의료시스템보다 높다는 과학적 근거가 축적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의료시스템의 효율성 저하에 대처하고 의료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 상승에 부응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의료개혁을 추구해 왔는바, 일차의료 강화는 그 핵심 전략 중 하나였다[1213]. 미국의 의료보장개혁도 일차의료와 깊은 관련성이 있는 '환자중심 주치의 의원(patient-centered medical home, PCMH)' 전략을 중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다[14]. 이들 정책이 모두 확고한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두고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수십년간 축적된 일차의료 연구성과와 무관하지만도 않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일차의료 지향적 의료시스템은 그렇지 않은 의료시스템보다 효율성과 형평성, 만족도 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이다[1516].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일차의료는 국민들의 의료이용 또는 의료시스템의 성과 면에서 여전한 중요성, 적어도 불가피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정책은 이러한 일차의료를 올바르게 지원하지 못했다.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계약 체결 시 의원의 건강보험 수가 인상 폭을 둘러싼 논란을 제외한다면 지난 이십 년간 있었던 굵직한 일차의료 정책이라야 1996년 주치의 등록제 시범사업 추진 시도와 2012년 동네 의원 만성질환 관리제도 실시를 꼽을 정도다. 정부가 일차의료 인력과 시설, 재정 등에 주목하고 중장기 정책을 수립하여 일관성 있게 추진한 적은 없다. 일차의료 연구나 그에 대한 지원도 다른 보건의료 분야, 예컨대 의료보장이나 병원 의료에 비하여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한의사협회지의 일차의료 특집 논문들은 일차의료의 규범적, 현실적 중요성 내지 불가피성과 정책과 연구의 낙후성 간의 간격을 줄이려는 시도다. 이 논문은 특집의 첫번째 논문으로 일차의료의 개념과 가치, 한국 일차의료의 현황과 전망을 개관함으로써 다른 논문들의 시좌를 확보하고 향후 일차의료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데 쓸 논의 재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개념
표준국어대사전은 '개념'을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으로 풀이한다[17]. 이와 같은 정의 자체는 어떤 사상에 대한 개념 정의나 토의가 관념적이고 무의미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하지만 학술·정책 논의에서 어떤 사상의 개념 정의와 그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그 사상의 개념이 명료하게 정의되고 그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논의 자체가 생산적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일차의료에 대한 합의된 개념이 없다면 일차의료 인력이나 시설, 재정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정책 논의는 명료성을 잃을 것이다[18]. 둘째, 어떤 사상들의 개념은 "마땅히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규범성을 강하게 내포함으로써 정책 수립과 평가의 잣대 구실을 한다. 예컨대 일차의료의 개념을 그저 현실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정의하게 된다면, 그것이 현실을 진단하거나 정책을 처방하는 기준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생산적인 학술·정책 논의를 위해서는 핵심 사상의 개념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이에 대한 합의를 추구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 점에서 일차의료 연구와 정책 논의의 출발점은 그 개념에 대한 토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차의료라는 용어는 1920년 영국에서 일명 도슨 보고서(Dawson Report)가 제안한 일차 보건 센터(primary health center)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9]. 도슨 보고서는 주로 일차의료의 인력과 시설 등에 주목하였으나 일차의료의 특성이라 할만한 내용도 기술하였다. 여기에는 오늘날 일차의료의 여러 개념들에서 볼 수 있는 환자 중심 의료(질병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지식), 포괄성(예방과 지역 사회 서비스, 치료 서비스, 치과 의료서비스 제공), 조정 기능(가정의 서비스와 방문 간호 서비스 제공, 병원으로의 환자 의뢰), 여러 분야 의료인의 협력(간호사, 임상 병리사, 의사, 행정가 등) 등이 묵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다[20].
가장 널리 알려진 일차의료 개념은 1996년 미국의학학술원(Institute of Medicine)이 제시하였다. 1990년대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의 의료개혁 시도와 관리 의료(managed care) 확산을 배경으로 일차의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21]. 의학 학술원의 일차의료 개념은 이와 같은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일차의료는 "개인의 보건의료 필요 대부분을 해결하고 환 자와 지속적인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며 가족과 지역 사회의 맥락에서 활동하는 책임을 지는 임상의사가, 통합적이고 접근성 높은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18]. 의학학술원은 일차의료 개념 정의에 사용된 여러 용어들에 상세한 주석을 달았는데 다른 개념 정의에서 관찰되는 일차의료의 속성에 해당할만한 것으로 가족과 지역 사회 맥락, 동반자 관계, 통합성, 접근성, 책임성 등이 있었다. 그중 통합성과 책임성은 다소 복합적인 개념으로 전자는 최초 접촉이나 문지기 기능과 관계있는 포괄성, 조정 기능, 지역 사회와의 상호 작용, 지속성을, 후자는 양질의 진료와 환자 만족, 효율적 자원 활용, 윤리적 행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되었다[18]. 이와 같은 개념 정의는 인구집단의 필요와 의료시스템의 구조에 주목하기보다 환자 개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19]. 그러나 의학 연구원의 일차의료 개념은 이전 논의가 인력이나 재정 등 의료시스템의 구조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을 성찰하고[21] 일차의료의 내용 내지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그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한 면이 있다.
한편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널리 쓰이는 일차의료 개념은 일반의학(general practice) 내지 가정의학(family medicine)과 불가분에 관계에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13] 이는 여러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비해 일반의학 전통이 깊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 유럽지역사무소는 일반의학이 일차의료 및 가정의학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22]. 이 점에서 세계일차의료의사학회 유럽지부(WONCA Europe)의 일반의학/가정의학 정의는 유럽 일차의료의 개념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정의는 일반의학/가정의학의 특징, 전문 과목으로서 일반의학의 성격, 일차의료 의사(general practitioner/family physician)의 핵심 역량을 제시하였는데, 이중 일반의학 분야의 특징이 일차의료의 개념과 비슷하다. 여기서 언급되는 일반의학의 특징은 ① 최초 접촉, ② 조정과 협력을 통한 효율적 자원 이용, ③ 사람 중심 접근, ④ 환자의 역량 강화empowerment), ⑤ 효과적 의사소통, ⑥ 진료의 지속성, ⑦ 지역사회 질병 특성을 감안한 의사결정 과정, ⑧ 포괄적 진료, ⑨ 질병의 조기 관리, ⑩ 건강 증진, ⑪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⑫ 건강문제에 대한 다차원적 대응 등 모두 12가지다. 또 이 특징들은 일차의료 의사가 배양해야 할 여섯 가지 핵심 역량, 즉 일차의료 관리(①, ②), 사람중심 진료(③-⑥),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⑦, ⑧), 포괄적 접근(⑨, ⑩), 지역사회 지향성(⑪), 총체적 모형화(holistic modelling, ⑫)와 연결된다. 이 같은 구성은, 원래 이 문서가 유럽연합 국가들 안에서의 의사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삼은 1993년 유럽연합 조정지침(EU Directive 93/16)이 의학교육을 규제한 데 비하여 졸업 후 수련의 내용과 질에 대한 규정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하였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23].
한국의 일차의료 개념 연구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일차의료 의사 16명을 포함한 전문가 패널 77명을 대상으로 델파이 기법을 적용한 이 연구는 일차의료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24]. "건강을 위하여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를 말한다.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환자-의사 관계를 지속하면서, 보건의료자원을 모으고 알맞게 조정하여 주민에게 흔한 건강문제들을 해결하는 분야이다. 일차의료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보건의료인들의 협력과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 연구에서 핵심 속성으로 본 것은 최초 접촉, 포괄성, 관계의 지속성, 조정 기능이었으며, 전인적 돌봄, 가족 및 지역 사회 맥락, 지역사회 기반이 보완 속성으로 분류되었다[24].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일차의료 개념들로부터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첫째, 널리 알려진 여러 일차의료 개념들은, 한편으로는 의료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차의료의 목표를 제시하는 규범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이는 개념 정의의 정책 연관성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유럽의 일차의료 개념은 졸업 후 수련 내용의 표준화와 관련이 있었다. 둘째, 일차의료의 개념 정의들이 제시하는 좋은 일차의료의 속성들은 구체적 기술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그 본질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Starfield[25] 역시 여러 전문가 조직 등에서 내놓은 일차의료 개념 대다수에서 최초 접촉과 지속성, 포괄성, 조정 같은 속성들이 공히 나타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셋째, 미국과 유럽에서는 공적 기관이나 전문가 조직이 합의를 거쳐 일차의료 개념을 제시하였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과 유럽에서는 의학학술원이나 세계보건기구 유럽지역사무소, 세계일차의료의 사학회 유럽 지부 등 공적 성격이 강한 조직들이 합의 과정을 거쳐 일차의료 개념을 제시하였고 이들 개념은 여러 일차의료 관련 정책의 출발점 구실을 하고 있다[1823].
그러나 일차의료의 개념이 학술·정책 논의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되려면 일차의료의 편익이 입증될 필요가 있다. 다음 절에서 다루는 일차의료의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가치
앞서 언급한, 일차의료 개념을 제시한 미국의학학술원의 문헌은 별도의 장을 할애하여 일차의료의 가치를 개인의 관점과 인구 집단 및 사회적 관점에서 상술하고 있다[18]. 개인의 관점에서 일차의료의 가치는 바람직한 일차의료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첫째, 일차의료는 건강 문제 대부분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최초 접촉). 비전문가인 환자가 자신의 건강문제를 지레짐작하여 어떤 의료기관에 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금전적 비용뿐 아니라 시간 비용을 줄여 줘 환자는 편리하게 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 둘째, 일차의료는 환자가 현명하게 의료를 이용하도록 도울 수 있다(조정 기능). 일차의료 의사는 환자가 안고 있는 건강문제가 일차의료 수준에서 해결 가능한 것인지를 판단하여 경우에 따라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직접 환자를 상급 의료기관에 의뢰하기도 한다. 셋째, 일차의료의 지속적 환자-의사 관계는 진료의 지속성과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감을 강화할 수 있다(지속성). 의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더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줄 개연성이 있고 이것은 환자의 건강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넷째, 일차의료는 질병예방과 조기발견, 건강증진에 효과적일 수 있다(포괄성). 일차의료 의사는 환자의 병력에 대한 충분한 정보, 포괄적 환자평가를 통해 질병 예방과 조기 발견, 건강증진에 필요한 조치를 제때 취할 수 있다. 다섯째, 가족 및 지역사회 지향적 일차의료는 효과적인 환자 진료에 기여한다(가족 및 지역 사회 지향성). 지역사회 학교나 요양시설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일차의료 의사는 학령기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들에 필요한 의료 및 사회서비스를 개별 진료와 효과적으로 연계할 수 있다. 감염병 신고 등 감시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공중보건 활동에도 이바지한다[18]. 일차의료는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하여 환자가 적은 비용으로 편리하게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인구집단 및 사회적 관점에서 일차의료의 가치는 여러 실증 연구를 통하여 그 근거가 축적되어 왔다. 일차의료는 비용을 낮추면서도 건강 결과를 향상시키며 의료의 질이 전문 의료보다 더 좋거나 적어도 전문 의료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161819]. 첫째, 비용 면에서 일차의료는 전문 의료(specialty care)보다, 일차의료 지향성이 강한 의료시스템은 그렇지 않은 의료시스템보다 효율적이다. 미국의 의료결과연구(Medical Outcomes Study)에 따르면 가정의학과나 일반내과 의사 등 일차의료 의사가 심장전문의나 내분비전문의 같은 세부 전문의보다 환자 입원율과 외래 방문율, 평균 검사 및 시술 횟수, 약품 처방률 등이 모두 낮았다[2627]. 또 미국 콜로라도 메디케이드(Medicaid) 가입자 중 주치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의료비용을 비교한 결과, 입원율과 응급실 방문율의 감소로 전자가 후자보다 의료비용이 약 15% 낮았다고 보고되었다[18]. 의료시스템 차원에서 일차의료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이 그렇지 않은 국가들보다 의료비용이 유의하게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161928]. 주로 미국에서 이루어진 연구들로 인구 대비 일차의료 의사 비율이 높은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하여 총 의료비용이 낮다는 연구결과들도 여럿 보고되어 있다[16]. 일차의료 의사들이 입원 지시, 시술 및 의약품 처방 등 의료 자원을 덜 사용하기 때문에 일차의료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중진국 내지 개발도상국의 일차의료 계획들(initiatives)이 적은 비용으로 의료 접근성을 높였다는 평가도 있다[29].
둘째, 일차의료가 강한 지역이나 의료시스템은 그렇지 않은 지역이나 의료시스템보다 인구집단의 건강수준이 더 높다. 미국의 주를 분석 단위로 삼은 연구에서 인구 대비 일차의료 의사 비율이 높은 주가 그 비율이 낮은 주보다 총 사망률과 영아 사망률, 심장 질환과 암, 뇌졸중 사망률, 신생아 사망률, 저출생체중아(low birth weight) 출생률 등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3031]. 18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각국 의료시스템의 일차의료 수준이 총 사망률, 총 조기 사망률, 천식과 기관지염, 폐기종과 폐렴, 심혈관 질환 사망률과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되었다[32]. 또 일차의료가 사회 경제적 건강불평등을 완화시킨다고 보고한 연구들도 있다[33343536]. 지난 30년간 개발도상국 또는 중진국에서 시행되었던 주요 일차의료 계획들에 대한 평가연구 결과, 일차의료가 어린이 사망률을 낮췄으며 일부에서는 사망률의 불평등 수준을 완화시켰다[29].
셋째, 일차의료의 질은 전문의료보다 더 좋거나 적어도 나쁘지 않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의료의 질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 하는 점이다. 의료의 질을 개별 질병수준에서 평가하여 의사의 기술적 수준(technical competence)에 초점을 맞추면 전문의료가 일차의료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하기 쉽다[37]. 그러나 질 평가를 특정 질병에 국한시키지 않고 환자 개인이나 인구집단 수준에서 하게 되면 결론은 달라진다. 의료 접근성과 적절성이라는 차원에서 일차의료는 환자의 포괄적 건강수준이나 인구집단의 건강수준 향상에 더 효과적이다[37]. 예를 들어 일차의료 의사와 그 밖의 전문의들의 만성질환자 진료결과 간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는 반면, 의료비용과 직결되는 자원 소모량은 일차의료 의사에서 더 적었다[2638]. 또 한 나라의 일차의료 수준과 의료비용 및 건강수준 사이에서 관찰되는 뚜렷한 상관관계는 의료의 질 향상에 일차의료 강화가 효과적임을 시사한다[192528].
요컨대, 일차의료는 환자 개인이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의료를 이용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의료시스템이나 인구집단 수준에서도 비용과 건강 결과, 질 면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일차의료 강화를 의료개혁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로 만들었다[121314151618]. 그러나 한국 의료는 세계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
2009년 말, 정부가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을 위한 특별조사단을 구성하여 일차의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이래 정부와 의료계, 학계 내외에서는 일차의료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활성화를 위한 제언들이 다수 발표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이들 논의의 공통 결론은 '일차의료의 위축' 내지 '비중 감소'이며 그 근거로 다음과 같은 점들이 지적되었다.
먼저 건강보험 진료비, 특히 외래 진료비에서 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3940414243]. 이는 의원에서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환자가 병원급 의료기관 외래를 찾는 비중이 높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3944]. 또 의원 의사는 병원급 의료기관 의사보다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지만 벌어들이는 건강보험 진료비는 더 적다[40]. 더욱이 의원이나 의원 의사 안에서도 수입이나 소득의 심한 불평등이 있으며[4145] 그 결과 의원 의사 증가율은 다른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 증가율보다 낮은 편이다[40]. 개원의나 신규 전문의 중 체계적인 일차의료 수련을 받은 의사 비율이 낮은 점[44]과 단독 개원 비율이 높아[4445] 근무 여건이 열악하고 서비스의 질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44]. 환자 진료 면에서 볼 때 의원에서 고혈압, 당뇨병 등 주요 만성질환이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으며[4346] 다른 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의뢰나 회송이 형식적이라는 점도 문제다[3942]. 환자들이 의원의 질적 수준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원의 경영난에 동의하지 않는다[41]. 나아가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일차의료가 취약하다는 진단도 있다[44].
이와 같은 지적들은 대체로 사실에 가깝다. 즉, 의원은 인력, 조직, 재정 등 투입 면에서 취약할 뿐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 환자 만족도 등 산출 및 결과 면에서도 그 성과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관리나 정책 면에서도 이렇다 할 만한 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의료시스템 차원에서는 효율성 감소와 의료의 질적 수준 저하, 건강 결과 향상의 답보상태라는 문제가, 의원 의사의 처지에서는 과중한 환자 진료와 의업에 대한 회의, 경영에 대한 불안감이,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원에 대한 불신과 큰 병원 선호 경향, 의료비용의 증가 등의 문제가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 계획 등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거나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경우 심화될 것이다.
다만 일차의료의 현실 진단 내지 현황 분석에 대한 기존 논의에서 검토가 필요한 것은 '의원=일차의료'라는 등식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Park [45]이 건강보험 자료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지적하였듯이, 의원은 비교적 균질한 일차의료 기관이라기보다는 상당한 이질성을 지니고 있는 의료기관을 포괄하는 용어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20여 개가 넘는 전문 과목이 있고 각 전문 과목별로 전문의 제도가 있으며 이들 전문의 중 다수는 개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에서 흔히 일차의료 의사로 분류되는 가정의학과, 일반 내과, 일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44]과 일반의가 상대하는 환자나 이들이 의원을 방문하는 이유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일부 전문 과목이 상대하는 환자나 이들의 의원 방문 이유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의료이용행태나 의료기관에 대한 인식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편, 지역에 따라 일부 병원급 의료기관이 일차의료를 담당할 개연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현행 의료법은 의원급 의료기관과 병원급 의료기관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병상 수 만을 제시하고 있고 국민건강보험법은 병원과 상급 종합병원을 제외한 종합병원도 첫 단계 요양기관으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한 수의 진료과목을 갖추고 있는 지역병원이 단독 개원 형태의 의원보다 더 포괄적인 일차의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일명 '병원화 보건소'로 불리는 보건의료원은 의료법상 병원으로 분류되지만 현실적으로 지역사회 일차의료기관의 구실을 하고 있다.
아마도 대다수 문헌들이[394041424345] 일차의료를 말하면서 실상은 의원 중심 '개원 의료'의 현실을 분석하는 까닭은, 일차의료 개념에 대한 합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일차의료의 현황 분석에 쓸 수 있는 데이터 접근이 어렵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에 공개된 건강보험 통계 등 집합데이터(aggregate data)를 바탕으로 한 분석결과가 조금 더 자세한 기관 단위 데이터의 분석결과와 전반적인 경향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경우에 따라 전혀 다른 분석 결과를 산출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조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의사 인력에 대해서는 보건복지통계연보의 데이터와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의 한국 데이터는 그 정의에서부터 차이를 보이는데, 전자는 면허 의사를 기준으로 삼는 반면 후자는 활동 의사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실제 의료 제공이나 정책수립에서 의미 있는 것은 후자일 텐데 일반에 구체적 내역이 공개된 것은 전자에 국한되어 있다. 일차의료의 현황분석 수준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진료 과목별, 소재 지역별로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에 근거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맞춤형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42].
요컨대 의원 현황분석을 간접적으로 살펴본 한국 일차의료의 현주소는 투입과 산출, 관리 또는 정책 면에서 대단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의원 현황이 엄정한 의미의 일차의료 현황과 같은 것은 아니므로, 정책수립을 뒷받침하는 양질의 현황분석을 위해서는 일차의료 데이터 기반의 확립과 접근성 보장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과제
지금까지 일차의료는 의료정책 영역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으나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유병률 증가, 동네 의원의 경영난 호소, 비효율적 의료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 등은 일차의료를 어느덧 의료개혁의 핵심 주제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만큼 일차의료에 대한 각종 논의와 정책 대안 제시는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일견 도출할 수 있는 방안은 거의 모두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47]. 예를 들어 정부의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 계획은 의료기관 종별 기능 차별화, 의료기관 간 연계 활성화, 만성질환·노인 관리체계 구축, 인력양성 제도개편, 의료서비스 수준 향상 기반 구축 등 일차의료 활성화와 관련된 정책들을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48]. 따라서 여기에서는 논의의 중복을 피하여 구체적 일차의료 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한 여건 마련이라는 차원에서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대한의사협회나 유관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한국 일차의료의 비전을 만들어나가고 이에 대한 의료계 내부의 합의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의료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차의료가 의료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여전하며, 이것은 여러 나라의 경험과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의료 이용, 그간 축적된 연구 결과 속에서 확인되는 바다. 그러나 정책이나 운동 차원의 일차의료는 여전히 구체성이 부족할 뿐더러 국민 건강과 양질의 의료를 추구하는 데 의미 있는 좌표로서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이것은 일부 연구자들이 도출한 개념적 수준의 일차의료의 비전일 수도 있고 의료계가 펼쳐 나갈 수 있는 일차의료 운동의 모토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의료계가 추구하는 일차의료가 어떤 것인지를 의료계 자신에게 납득시켜야만 의료정책 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정부나 정치인, 국민에게 일차의료를 설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일차의료 현황분석과 모니터링, 보건의료 관리 연구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대다수 문헌들은 일차의료 데이터 기반이 미비하고 접근성이 낮아 분석의 정확성과 구체성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의원 경영실태 조사 결과는 의료계 바깥의 이해 당사자들에 의하여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대한의사협회나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산업진흥원 등 유관 기관과 협력 관계를 맺고 양질의 일차의료 데이터 기반을 공동으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이를 연구자들에게 개방하여 한국 일차의료 연구의 지식 기반을 확충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개발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만이 일차의료 "개혁의 필요성과 기대 효과에 관한 지식 기반을 확보하고 국민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는[49]"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중장기 일차의료 의제에 대한 논의를 꾸준하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중장기 의제에 속하는 것 중 하나가 의사 인력양성이다. 그간 정부는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 계획에서 인력양성제도 개편-전문의제도 개선 및 일차의료 인력양성이라는 정책 과제를 제시한 바 이것은 향후 인턴제 폐지와 전공의 수련 교육과정 개선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일차의료 의사 인력양성 방안이 깊이 있게 논의되고 그와 관련된 전문 과목별 전공의 정원 책정 기준과 결정 주체도 꾸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현 재 이 논의는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의 제도개선 특별조사단과 대한의학회 등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유관 의사단체는 일차의료 강화라는 견지에서 논의 내용을 숙지하고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공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차의료 활성화는 병원 중심의 의료시스템을 일차의료에 바탕을 둔 의료시스템으로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므로 의료계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적극적 역할이 요청된다. "일차의료는 의료체계의 일부로서 이러한 구조(지난 수십 년간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의료기관의 소유 체계, 의료기관 종류별 분업 관계, 의사와 의료기관의 관계, 일차 진료 의사의 불분명한 구분 등)의 제약을 받게 되며, 따라서 일차의료 문제를 의료체계 전체와 별도로 다룰 수가 없다[50]." 따라서 의료계의 일차의료 활성화 노력은 일차의료 관계 학회나 개원의사단체에 국한될 수 없는 문제다. 의료계 내외의 사정과 정책 환경 변화를 고려해야겠으나 의료계가 주체적으로 일차의료 발전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전체 의료계를 아우르는 대한의사협회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결론
일차의료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자주 찾는 공식 의료의 첫 단계이며 의료나 의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전체 의료시스템의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여전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 일차의료는 투입과 산출 면에서 비중이 줄어들고 있으며 그 질적 수준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도 낮은 형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였다는 점도 일차의료 위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관리의 중요성 대두, 의료시스템의 비효율성, 환자 등 국민들의 불만, 의사들의 좌절과 동네 의원 경영난 등은 일차의료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일차의료 정책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고 정부도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러한 일차의료 정책 환경 변화는 의료계의 대응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다. 의료계는 대한의사협회와 유관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일차의료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확한 현황분석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며 중장기 의제에 꾸준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일차의료가 의료시스템의 필수 불가결한 일부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하며 바로 이 때문에 의료계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Peer Reviewers' Commentary
이 논문은 일차의료의 개념정의와 역사, 중요성과 가치,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관하고 해결해야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지속성 및 효율적인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일차 의료활성화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논문이라고 생각된다. 일차의료의 핵심가치와 개념정의가 의사사회 내에서 뿐 아니라 정책연구자나 행정부 담당자에서도 아직 합의되지 않은 현실에서 앞으로 더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 일차의료의 방향을 잡는 기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리: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