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원격의료란 대면진료와 대응되는 의미로 전통적으로 의사-환자 간 진료행위가 동일공간에서 이루어지던 것에 비해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별도의 장소에서 화상 및 음성, 데이터 전송 등의 방법으로 진료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원격의료의 광의 개념에는 원격진료와 원격모니터링이 포함되지만, 협의의 원격의료는 모니터링을 제외한 진찰과 치료, 처방, 즉 원격진료만을 의미한다[
1].
지난 2002년 한국에서도 의료법에 최초로 원격의료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어 의사와 의료인간 원격의료가 가능해졌고, 2014년부터 정부 주도로 격·오지와 군인 등을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2016년 9월부터 정부와 의사협회 공동으로 원격모니터링과 전화상담을 포함하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격의료와 관련된 논란의 쟁점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원격의료에 대한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다. 둘째,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할 것인지 허용한다면 어느 범위까지 허용할 것인가이다. 셋째,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원격모니터링과 전화상담을 포함한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원격의료인지 여부와 원격의료를 본격 시행하기 위한 복선이라는 의혹에 대한 의견대립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대한민국에서의 원격의료의 필요성
정부는 한국에서의 원격의료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첫째, 도서·벽지 등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그리고 교도소 재소자, 군인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원격의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진료소 확충이나 응급후송시스템 구축 등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3]. 둘째, 당국이 주장하는 원격의료의 필요성은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의 상시적 관리를 통한 치료효과 증대와 합병증 예방을 위한 만성질환 관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의료계도 적극 협조할 의향이 있다. 또한, 이를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과 동시에 추진하자는 제안을 일관성 있게 주장하여 왔으며 현재 의·정간에 공동 추진하고 있는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의료접근성이 매우 높고 원격의료는 그 필요성이 적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이 넓은 외국에 비해 인구 집중지역이 많고, 웬만한 규모 이상 도시에는 한 건물 건너 하나씩 병·의원이 들어서 있다. 낙도나 오지에도 보건지소나 보건진료소 등이 있어서 기본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즉, 우리나라는 여타 국가들과 비교해 단위면적 당 의사 수 등을 볼 때 지리적 의료접근성이 대단히 좋은 편이다[
4]. 이렇게 의료수급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우리나라 현실에서 원격의료는 벽·오지나 특수신분인 일부 등 그 수요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이마저도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보다는 의료인을 매개로 한 형태가 더 효율적일 것이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대부분 이러한 형태라는 점에서 증명된다. 또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 유효성과 안전성 그리고 보안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Figure 1) [
1,
4].
현재 진행되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원격의료인가 아닌가?
또 하나의 쟁점인 현재 진행되는 원격모니터링과 전화상담을 수단으로 하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원격의료의 유형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이 부분이 원격의료에 포함된다는 의미의 발언을 하여 약간의 소동이 있었을 만큼 원격의료 관련 현안은 의료계, 특히 의사들 입장에서는 극히 예민한 문제이다.
원격모니터링과 전화상담은 당연히 광의의 원격의료에 포함된다. 한편 원격의료를 원격진료와 원격모니터링이라는 분야로 세분해서 설명하는 경우 원격모니터링은 원격진료와 건강상담 및 관리라는 양 분야에 걸쳐 공유된다. 우리가 흔히 협의의 원격의료라고 표현하는 경우 원격진료만을 의미하며 원격모니터링을 제외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Figure 2).
원격의료 시행여부 판단의 전제조건은 무엇보다 국민건강이다.
원격의료와 관련된 더 큰 문제는 원격의료가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보다 정보통신이나 경제관련 부처 등의 주도 아래, 특히 의료정보산업 등과 경제활성화 차원의 의료 외적인 요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원격의료의 유효성 검증이나 예민한 환자개인의 의료정보 보호,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 등에 대한 대책도 없이 의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5]. 원격의료를 시행하는 것이 진정 국민건강에 유익한 것이라면 당연히 도입해야 한다. 다만 대한민국 의료전문가인 의사들이 원격의료의 시행이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위해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의 시행에는 정말 신중을 기해야 한다[
5]. 또한 원격모니터링과 전화상담이 원격의료인지 아닌지 하는 논란 역시 이 기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본은 원격의료를 지난 40년간 의사들의 요구와 주도하에 신중히 진행시켜 왔다. 최근에서야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했지만 주로 활발한 원격의료 유형은 대부분 영상판독이며 다른 수요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집단의 우려를 무시하고 원격의료에 있어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의료 외적 목적으로 졸속강행하려 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는 결코 국민건강에 도움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 있다[
6].
결론
국민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원격의료를 도입해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대면진료에 비해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으므로 부득이하게 의료 서비스 제공이 어려운 지역의 환자에게 극히 제한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
3]. 의료 취약지 관련 원격의료는 현행법의 의료인 매개 원격의료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군인이나 거동 불편자 대상 원격의료는 후송제도나 왕진, 촉탁의 제도 등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일부 논쟁이 있다 하더라도 만성질환관리 차원의 원격모니터링, 전화상담 등은 국민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원격의료 논란과 상관없이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향후 주민 건강관리서비스 등도 현재 의·정간 합의하에 진행하고 있는 일차의료기관 중심의 만성질환 시범사업 결과에 근거하여 좀 더 진일보한 형태의 시스템을 찾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에게 현실적으로 당장 도움이 되고 꼭 필요한 의료시스템은 원격의료가 아니다. 즉 응급환자가 인력과 시설 부족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이 없도록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급선무이지 노인환자 한명을 부축하여 모니터 앞에 앉혀놓고 보여주기 위한 쇼를 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Figure 1
The number of physician around the world (per unit area). The land area includes arable land but excludes area under inland water bodies (i.e., major rivers and lakes). The number of Korean practising physician per 1,000 population is 2.2 but, the number of Korean practising per the nation's total land area is 10.9. Modified from Seo KH. Comparative analysis for governance and projection models of the physician demand and supply among five countries [dissertation]. Seoul: Ewha Womans University; 2016 [4].
Figure 2
The concept of telemedic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