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일차의료기관은 환자가 가장 먼저, 가장 자주 이용하는 보건의료시스템의 첨병으로 질병보다 사람에 초점을 두며, 국가보건의료체계를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강화하여 건강과 안녕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지역사회에 제공하고 있다. 일차의료기관은 건강증진에서부터 질병의 예방, 치료, 재활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1]. 따라서, 일차의료기관은 지역사회에서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양질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며, 치료뿐 아니라 급성기 질환의 치료를 주로 담당하는 병원급 진료에서는 제공하기 어려운 예방과 건강증진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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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의료기관에서 제공하는 질병예방 진료
일차의료기관에서 제공할 수 있는 질병예방 진료로는 금연 교육, 절주 교육, 영양 상담, 운동 상담, 사고 예방 교육, 스트레스 상담, 성병 예방 교육, 약물 오남용 예방 교육, 치과질환 예방 교육, 예방접종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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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예방 진료를 통한 생활습관 교정이 건강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을 밝힌 대표적인 연구가 1965년 알라메다 카운티에서 시작된 선구적인 종단연구이다. 이 연구에서는 금연, 절주, 하루 7-8시간의 수면, 운동, 적정 체중 유지, 간식 안 먹기, 아침 챙겨 먹기의 7가지 건강 습관 중 6가지 이상을 실천하면 5가지 이하 실천하는 사람에 비해 남성은 11년, 여성은 7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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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볼 때 심장질환, 뇌졸중, 암, 당뇨병, 만성 폐질환을 포함한 비전염성 만성질환이 사망과 장애의 주된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전체 사망의 74%가 이러한 비전염성 만성질환에 기인한다. 이러한 비전염성 만성질환들은 흡연, 운동 부족, 과도한 음주, 건강치 못한 식습관, 대기오염 등의 주요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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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에서는 보건의료자원이 부족한 의료현장에서 일차보건의료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필수적인 비전염성질환 중재 패키지(package of essential noncommunicable disease, PEN)를 2010년 처음 발간하였고, 2017년과 2020년에 개정판을 발간하였다. 이 패키지에 포함된 중재법에는 심혈관질환, 당뇨병, 만성폐질환의 조기진단과 치료 및 관리, 암의 조기진단과 함께 건강한 생활습관, 자가관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패키지에서는 일차의료기관의 의사 등 의료진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양식과 도구들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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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차의료기관 영역에서는 이러한 급증하는 비전염성 만성질환에 대한 예방 진료를 시행할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어 있지 않다. 23개의 관련 연구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만성질환에 대한 예방 진료를 담당할 일차의료기관 인력의 수와 역량이 부족하고, 질병예방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재정 지원이 불충분하며, 관련 전략이나 지침이 미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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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의료기관 영역에서 진단과 치료에 대한 과중한 업무 부담이 질병예방 진료에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영국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영국에서는 일차의료기관 진료를 예약한 환자 중 5%가 4주 이상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차진료의사가 질병예방 진료에 시간을 투입하면, 단기적으로는 진료 대기일수는 더 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차진료의사가 질병예방 진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환자의 건강 수준을 높이고 대형병원이나 분과전문의에게 의뢰될 질병 발생을 줄여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일차의료기관 현장에서도 질병예방 진료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의사 진료비가 낮게 책정되어 있고, 질병예방을 위한 상담이나 환자 교육에 별도의 수가가 주어지지 않고 있기에 상담과 교육보다는 각종 검사와 약물 처방이 우선시되는 단시간의 진료가 흔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의사의 직무만족도와 환자의 건강증진 활동이 모두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고, 의과대학 교육과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도 질병예방 진료를 위한 환자 교육이나 상담 기술에 대한 교육 및 수련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행위별 수가제가 시행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근거중심의 질병예방 진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의료보험 개혁법(Affordable Care Act)을 통해 권장되는 질병 예방 진료 행위에 대해 급여를 실시하고 있다. 급여 대상이 되는 질병예방 치료는 미국 질병예방 특별위원회(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예방접종 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on Immunization Practices), 보건의료자원서비스청(Health Resources and Services Administration)의 밝은 미래 프로그램(Bright Futures)과 여성예방서비스 이니셔티브(Women’s Preventive Services Initiative) 등 4개의 전문의학기관과 단체로부터 권고되는 서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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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및 제언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의 보건의료환경은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력, 병원 등의 의료기관 등 모든 면에서 질적, 양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질병이 발생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치료의학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1963년 12월, 국내 최초의 건강보험법인 의료보험법이 시행되었고, 1977년에는 건강보험을 의무화하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1989년에는 12년 만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어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에서는 급증하는 의료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모든 의사가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했기에 진료실에서 질병예방 서비스를 제공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2022년 전 국민이 보건의료에 사용한 비용인 경상의료비가 200조원을 훌쩍 넘어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대비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국가의 GDP 대비 경상의료비 비율 평균은 9%대 중반으로 우리나라 수치가 처음으로 OECD 평균을 넘어섰다. 따라서 이제는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물지 말고, 진료실에서 질병예방 진료를 통해 질병 발생을 감소시켜 전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의료비 증가세를 누그러뜨려야 할 시점이다. 따라서 의과대학과 학회, 병원에서는 질병예방 진료에 대한 교육과 수련을 강화하고, 보건당국에서는 질병예방 진료에 대한 보상체계를 만들어 질병예방 진료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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